[횡설수설]송문홍/분열하는 西歐

  • 입력 2003년 12월 5일 18시 34분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0여 년 전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부랑자와 넋 나간 ‘괴물’들로 득실대는 기차 흡연 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에코는 교직원 식당에서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교수들을 만난다. 식사 후 에코는 좌중에 ‘담배 피울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불편한 침묵, 어색한 미소가 오간 뒤 누군가 문을 모두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모두가 10분간 ‘감미롭고 짜릿한 위반행위’를 즐겼다는 얘기다(에코의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에서).

▷에코가 지금 뉴욕에 간다면 다시 한번 그런 스릴을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 불가’다. 장전된 총은 괜찮아도 금연장소에 재떨이가 보이는 것은 불법인 도시가 뉴욕이기 때문이다. 5월에 발효된 금연법에 따르면 단순한 장식용이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는 재떨이도 눈에 띄면 안 된다. 유럽은 흡연에 대해 미국보다 한결 관대하다. 에코 같은 ‘흡연파’ 유럽인은, 다른 건 몰라도 문화적인 면에서는 한 수 아래로 봐 왔던 미국이 갈수록 이상해져 간다고 생각할 법하다.

▷지금까지 ‘서구(西歐)’는 유럽과 미국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학자 도미니크 모이지는 그 ‘서구’가 아직도 존재하느냐고 묻는다(‘포린 어페어스’ 최근호). 냉전 시절 ‘두 개의 유럽과 하나의 서구’였던 것이 이제는 ‘하나의 유럽과 두 개의 서구’로 바뀌지 않았느냐는 반문이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갈수록 뚜렷해지는 정치적 사회적 정서적 간극은 멀리 보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부터, 가깝게는 2001년 9월 11일의 테러가 촉매제가 됐다고 모이지는 풀이한다. 한마디로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힘을 과시하는 ‘비스마르크적’인 미국의 처신이 유럽인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고, 이런 현상은 양측 가치관의 골을 더 크게 벌려 놓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 여러 가지를 함께 나누고 있는 캐나다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캐나다는 미국 주류사회의 불편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성혼인, 마약 등 첨예한 이슈들을 법으로 허용했거나 허용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도 거부했다. 이러다가 미국이 같은 진영 안에서도 ‘왕따’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궁금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서구가 분열할 때 ‘9·11 이후의 세계질서’가 어떤 모습이 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결국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이 역시 미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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