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겨우 1년 정도밖에 안됐는데 3년이나 남은 임기를 포기하고 총선에 나서는 것은 국민이 단체장들을 뽑아준 원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단체장들은 어느 길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달라.”
이 총장의 이날 발언은 총선에 나설 단체장들의 사퇴 시한(17일)이 다가오면서 동요를 보이고 있는 일부 단체장들에게 스스로 출마 의사를 접어 달라고 요구하는 의사표현이었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출마하는 단체장에게는 공천심사 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할 만큼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물론 총선에 나서려는 단체장들은 “참정권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행정공백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배지’에 목을 맨 듯한 일부 단체장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단체장의 출마 러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돼 왔고 정치적 논란을 빚어 온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이 이처럼 뒤늦게 수선을 떨고 나선 것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 대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말만 무성했지 정작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진지한 논의나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한 일은 고작 헌법재판소가 9월 25일 ‘선거일 전 180일까지’였던 총선 출마 단체장의 사퇴 시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부랴부랴 단체장 사퇴 시한을 총선 전 120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한 것이었다.
더욱 한심한 대목은 유력 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정치권의 자세가 이율배반적이란 점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단체장의 중도 사퇴를 비판하면서도 수도권에서 일부 경쟁력 있는 단체장들에게 총선 출마를 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사정은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우리당의 총선 출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단체장들은 “국회의원만이 주민에게 봉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자에게 하소연하기까지 했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원 당선이나 총선 승리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 실천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이 총선 때마다 정파적 혹은 개인적 이해 때문에 흔들린다면 한국의 정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이 대증적 요법에 매달리기보다 근본적 대책 마련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정연욱 정치부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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