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 에세이]패장들 사퇴와 경질사이

  • 입력 2003년 12월 8일 17시 54분


프로야구 두산의 전신인 OB베어스는 94년 윤동균 감독과 선수와의 불화로 시즌 막판 김인식 감독으로 교체했다. 하위권을 맴돌던 OB베어스는 이듬해 챔피언에 올랐다.

주말 골퍼들은 자신의 샷에 대해 동반자들이 칭찬할 때 겸손의 표현으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술보다는 운이 좋아서 그렇지요’란 뜻. 꼴찌를 하던 팀이 감독이 바뀌어 우승하면 ‘혼칠기삼(魂七技三)’이라고 해야할까.

프로농구도 팀 분위기와 선수들의 정신력 강화를 위해 취하는 몇 가지 행태가 있다.

첫째는 감독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다. 올 시즌 초에 SK 이상윤 감독이, 최근에는 SBS의 정덕화 감독이 머리를 잘랐다. 현재 7승13패인 SBS는 7승중 3승을 감독 삭발 이후에 거뒀다. 효과를 본 셈이다.

두 번째는 감독이 바뀌는 것이다. 감독 본인 혹은 구단이 취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여기에는 사퇴와 경질이 있다. 사퇴는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만두는 것이고 경질은 이른바 잘리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명예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수 년 전 얘기다. 시즌 초부터 성적이 좋지 않던 A감독은 구단이 퇴진 압력을 가해오자 어느 날 경기가 끝난 후 구단 관계자와의 술자리에서 홧김에 감독을 그만 두겠다고 했다. 구단은 그날 밤으로 언론사에 ‘A감독 자진 사퇴’라는 보도 자료를 돌렸다. 다음날 A감독이 펄펄 뛰었음은 물론. 사퇴한 적은 없고 경질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보통사람 생각에는 경질 보다 사퇴가 모양이 낫다고 생각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두 가지의 중요한 차이는 계약 잔여기간 중 경질은 연봉을 보상받을 수 있으나 사퇴는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주 프로농구의 화두는 역시 모비스를 떠난 최희암 감독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찍 포기하고 떠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다. 연세대 시절 최 감독 밑에서 코치를 했던 박건연 KBS해설위원은 최 감독의 마지막 경기를 중계하면서 4쿼터에 승부가 뒤집히자 “저럴 때 감독은 미칩니다. 정말 울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다.

그의 퇴진을 놓고 언론사 마다 사퇴와 경질로 표현을 달리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그 표현에 토를 달지 않았다. 더 미치기 전에, 남들 앞에서 울음보가 터지기 전에 떠나고 싶어서였을까.

방송인 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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