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86…목격자 (2)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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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식이, 그러니까 이우근이하고는 밀양 보통학교에 다닌 6년, 그리고 보통 고등학교 2년, 그렇게 8년을 동기생으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반을 안 바꾸니까, 1학년 때 대나무반이면 졸업할 때까지 대나무반입니다. 우리는 여덟 살에 입학했지만, 열 살, 열하나, 열둘에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어서 거의가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죠. 춘식이하고 나는 나이도 같은 데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잊었지만, 아무튼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하나자키라는 일본 선생이 있었는데, 툭하면 학생들을 때렸습니다. 전쟁 때문에 식량은 부족한데, 우리들은 한창 먹고 쑥쑥 자랄 때라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학생들이 무씨니 홍당무씨를 뿌려서 재배하면서 농업을 배우는데, 춘식이하고 첫닭이 울락말락하는 시간에 실습하는 밭에 가서, 이 정도 자란 홍당무를 뽑아 이렇게 흙을 털어내고 그냥 씹어 먹어요. 달달한 게 얼마나 꿀맛이던지. 아니, 도둑질하고는 다르죠, 빽빽하게 자란 데서 솎아내는 거니까, 말 그대로 훌륭한 실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교단에 선 하나자키 선생님 아침 점호도 하기 전에 이러는 겁니다. 어이, 홍당무 뽑아 먹은 녀석 누구야, 정직하게 말해. 평소에는 정직하게 말하면, 오오 그래 정직하구나, 모두들 있는 데서 두 번 다시 안 그러겠다고 맹세하거라, 하면서 봐줬어요, 그래서 춘식이하고 나는 손을 번쩍 들었죠. 그랬더니, 니시하라하고 구니모토가 먹었다고. 네, 먹었습니다. 이 짜식들이! 이 얼간이 짜식들! 야,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온 얼굴이 얼얼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학교 울타리에다 철조망을 빙 둘러놨죠, 하지만 교문으로 들어가려면 먼 길을 빙 돌아가야 하니까, 다들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하나자키 선생네 집 앞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었죠. 어느 날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어이, 니시하라, 뭐하는 거야, 하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까, 하나자키 선생이 떡 서 있는 겁니다. 니시하라군, 이리 와 봐, 라고 하기에, 이제 죽었구나 하고 이를 악물고 눈을 꾹 감았더니, 너희 집에 조선 김치 있지, 김치, 내일 좀 가져와라, 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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