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교수=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고 야당 대표가 단식투쟁까지 벌이는 한국의 정치상황은 뭔가 비정상적입니다. 정치안정을 위한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양수길 전 대사=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재신임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은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구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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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왜 정치개혁인가 |
▽모종린 교수=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대선경쟁이 시작되고 조기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납니다. 특히 대선 때 과잉 약속으로 국민의 기대를 높여놓고는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개혁드라이브를 걸어 많은 적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7, 8개월쯤 지나면 오만해지고 권위적이 됩니다.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야당과 좀처럼 타협을 하지 않으려 하죠. 이때 결정적으로 부패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은 실망하고 적들은 반격을 합니다. 특히 대통령이 대중 영합적 정치를 하다 보면 정치 불안이 임기 내내 계속됩니다.
▽김용호 교수=노무현 정부 들어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는 과거와는 달리 ‘약한 대통령, 강한 국회’로 집약됩니다. YS나 DJ는 카리스마와 지역패권 공천권 정치자금 등을 통해 사당(私黨)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국회를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기반이 빈약하니까 국민투표처럼 시민사회를 상대로 자신의 기반을 찾으려는 시도가 자꾸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5년 단임의 대통령과 4년 임기 국회의원간의 선거 주기를 하나로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양대 선거의 엇박자에서 초래되는 정책의 일관성 상실과 국력 낭비를 극복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보다 분명히 물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인태 수석=대통령 4년 연임제든 내각제든 분권형 개헌을 하는 문제는 17대 국회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책임총리제는 지역구도 타파를 전제로 개헌 전이라도 현 대통령제 헌법 속에 가미돼 있는 내각제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새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렇게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개헌 전 과도적으로 정치적 약속에 의해 총리의 권한을 의회에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혁백 교수=대통령제에서 국민적 위임을 받지 않는 총리에게 대통령의 권력을 위임한다는 것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대통령제에서는 오히려 책임총리제를 폐지해야 된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완전한 책임을 지고 3권 분립 하에서 국회와 협력관계를 구축해야지, 책임소재가 모호한 책임총리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책임총리제의 취지로 거론돼 온 권력분산을 위해서는 차라리 부통령제를 신설하는 게 맞습니다.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 뽑힌 부통령과 어느 정도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양 전 대사=그러나 정치불안의 궁극적 원인은 정부가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결국 내각책임제가 아닐까요.
▽강경식 이사장=정치안정을 대통령제의 장점으로, 그리고 의원내각제는 정치불안정을 가져온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제 겪어본 바로는 대통령 5년 임기라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정부는 법으로 아무리 임기를 보장해도 제 역할을 못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죠.
▽김 교수=내각제로 바꾸면 안정이 된다는 식의 명제에 대해 이의가 있습니다. 내각제의 핵심은 정말 제대로 된 정당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정당이 일반 유권자의 기대를 제대로 수용해낼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내각제를 한다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재호 위원=맞습니다. 거대 야당이 있다지만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주요 정당의 지지도가 20%, 10%대에 불과합니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은 무당파에 속합니다. 과반수에 육박하는 이들의 의사를 반영할 매개체가 없기 때문에 영남과 호남의 지역구도에 기초한 기계적인 양당구조에 회의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정치적 다원주의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최소한 3, 4개 당의 다당제를 통해 국민의 기대와 욕구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 교수=여소야대를 불안정의 요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여소야대는 대통령제의 자연스러운 산물입니다. 대선을 치르고 난 다음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유권자의 견제심리가 작동한다고 보면 여소야대는 국민의 뜻이며 이 구도 아래서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여야간 협력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구조가 바뀌어야 됩니다. 중앙당 지도부가 의원들을 완전히 구속하고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거대 야당간의 대결정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김 교수=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 자체가 입법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 가령 미국 의회조사국(CRS) 같은 조사 감사 능력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주자고 하면 전부 반대할 것입니다. 의원 몇 명 늘리는 데도 반대하니까요. 행정부의 장관은 수백명의 스태프를 갖고 정책을 입안하는데 국회와 경쟁이 되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다시 무능한 국회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임 교수=흔히 국회는 ‘돈 먹는 하마’ 라고 하는데 국회의 예산은 1년에 2800억원으로 웬만한 군지역 예산보다 적습니다. 국회나 정치를 최소화시키자는 논리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강 이사장=행정부 관리들이 입법권을 멋대로 행사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시행령도 대폭 없애야 합니다. 특히 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세금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좌우하는 것을 국회가 막아야 합니다.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치권 대선-총선 불일치 해소방법 논란▼
전문가들이 4년 주기의 국회의원 선거와 5년 단임의 대통령 선거 사이에 발생하는 주기 차이와 투표 결과의 불일치를 정치 불안 및 갈등의 한 요인으로 지적한 데 대해 여야 4당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각 당은 입장에 따라 엇갈린 해법을 제시했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현재 당내에서 이 같은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 주기와 맞추는 방안과 분권형 개헌을 통해 원내 다수당이 총리를 맡게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보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빈번한 전국 선거로 인한 정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양대 선거 주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비대한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막강하게 하는 것이어서 곤란하다. 내각제로의 전환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는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 시기를 하나로 맞춰주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채택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총무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는 것”이라며 “다수당이 총리를 맡고 국정을 운영하다가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면 총선을 통해 다시 새로운 다수당과 내각이 탄생한다면 대선과 총선 불일치로 인한 문제는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토론참석자(가나다순)▼
▽강경식(姜慶植)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용호(金容浩)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모종린(牟鍾璘)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양수길(楊秀吉) 전 주OECD대사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이기선(李基善) 중앙선관위 홍보국장
▽이재호(李載昊) 본보 논설위원
▽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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