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보트 ‘조디악’. 세종기지에서 인근 칠레 프레이 공군기지로 이동하기 위해 보유한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남극에서 사실상 ‘한국대사관’ 역할을 하는 세종기지는 세종 1∼3호로 불리는 고무보트 3척을 갖고 있다. 세종 1, 2호가 실종됐지만 3호는 비상용이어서 쓸 수도, 운전할 사람도 없었다.
이 때문에 수색은 대부분 인근 외국 기지에서 보유한 헬기와 중장비, 구조선박에 의존했다. 결국 구조된 7명 가운데 4명은 러시아 구조대에 의해, 3명은 칠레 공군 헬기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설이 15년 전 그대로입니다. 업그레이드가 안 됐죠. ‘깡통’(컨테이너 숙소) 속에서 비인간적으로 생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최근 15년 동안 15차례 남극 기지를 다녀온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강성호(姜晟鎬) 책임연구원은 세종기지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세종기지 사고를 전적으로 장비 탓으로만 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혹독한 남극의 기상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일수록 ‘열악한 장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극지(極地) 연구의 필수품인 쇄빙선(碎氷船)이 필요하다는 건의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늘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하다 작년에 예산을 일부 책정했다. 남극 기지를 운영하는 18개국 가운데 쇄빙선이 없는 곳은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폴란드는 그나마 비슷한 기능을 하는 내빙선(耐氷船)을 보유하고 있으나 한국은 이마저도 없다.
또 해양연구원이 신청하는 다른 예산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세종기지 컨테이너 숙소의 밑동과 기름 탱크는 녹슬어 갔고 대원의 안전은 위협당했다. 쇄빙선은 러시아에서 빌려 쓰고, 헬기는 칠레에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9일 세종기지의 운송 및 연구장비를 현대화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고무보트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비교적 안전한 쇄빙선을 갖추겠다는 부분도 포함됐다. 익명을 요구한 해양연구원의 한 박사는 “꼭 태풍 피해 대책을 보는 것 같다”며 “태풍으로 한번 큰 피해를 보면 기상청에 슈퍼컴퓨터를 사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행정을 반복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따를지 걱정하는 것이 기자뿐일까.
차지완 경제부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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