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호근/‘고시(考試) 왕국’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32분


국가 관료 선발에서 고시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고시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만 가는 한국은 ‘고시왕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취업시즌이라 그런지 졸업반 강의실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신입생 시절의 생기발랄하던 표정은 간 데 없고 어떤 직업과 인생경로를 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역력하다. 취업문을 통과한 학생들은 조금 느긋한 표정이지만, 갈 곳이 아직 마땅치 않은 학생들은 초조하기만 하다.

▷청년실업률이 8%대에 이르렀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고시에 도전하는 학생 수가 급증했다. 고시열풍은 이공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학년부터 과학도의 꿈을 접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고시는 이제 삼시(三試)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쟁률이 수백 대 1로 치솟은 언론방송계는 ‘언론고시’로 통하고, 재벌기업도 ‘입사고시’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급제한 학생은 여전히 소수다. 고시문 통과하기가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시는 조선시대 과거(科擧)의 현대판이다. 이렇다할 양반 자제들은 좋든 싫든 과거를 봐야 했다. 지금의 창덕궁이 과거를 보던 자리로, 과거가 치러질 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양반자제들로 한양시내가 붐볐다고 한다. 하지만 급제한 사람은 장원, 차상, 차하를 위시해서 약간 명. 나머지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귀향해야 했다.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원급제를 증명하는 왕의 교지(敎旨)와 마패 같은 것을 위조해 주는 인쇄업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귀향길인 왕십리와 잠실에 진을 치고 낭패감에 젖은 양반자제를 유혹해 돈을 벌었다.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위조된 교지와 마패의 효력은 오래갔다. 물론 머잖아 들통이 나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겠지만.

▷문학에도 일종의 고시반이 생겨났다. 이름 하여 ‘신춘문예 준비반’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신춘문예는 자제할 수 없는 설렘과 함께 다가왔었다. 신년호에 게재되었던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섣달그믐 이슥한 밤과 첫새벽의 잠을 설치게 했다. 1년 동안 갈고 닦은 누군가의 고뇌에 찬 창작열이 활자화된 것을 전해 받는 순간을 그 시대의 문학청년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 홀로 외로운 창작’이었던 신춘문예가 인터넷시대에는 고시촌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신춘문예 등단을 위한 강좌가 개설되고 신춘문예 준비반이 전문적으로 가동된다. 머지않아 신춘문예 고시촌이 생겨날 지경이라면, 한국은 이래저래 ‘고시왕국’이다.

송호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hkn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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