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강덕영/‘삶은 달걀’의 작은 기적

  • 입력 2003년 12월 17일 18시 33분


강덕영
회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 회사가 잘 되느냐 못 되느냐는 문제도 결국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경영 분위기는 사람들끼리 좋은 감정으로 서로 협력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생산파트 중에서 내가 좀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부서가 품질관리부서다. 이 부서는 각자 개성이 강하고 좀처럼 단결이 안 되는 부서다. 얼마 전에 부서장이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부서장은 여러 차례 단합을 강조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우연히 점심식사 시간에 부서장이 “옛날 ‘도시락 속의 달걀’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라고 한 것이 발단이 돼 직원 모두가 달걀에 담긴 추억담을 주고받았다. 요즘은 달걀이 흔하지만 옛날에는 달걀부침 도시락을 싸온 친구들이 부자 대접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신입 여직원이 다음날 아침 달걀 수십개를 삶아 갖고 와 전 부서원에게 두 개씩 나눠줬다. 아침을 안 먹고 나온 사람이 많아서 모두들 아주 맛있게 먹었다.

특히 부서장은 이 달걀을 먹으면서 부하직원이 자신을 환영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마움에 목이 메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신입 여직원에게 고마워했다.

그 뒤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자리를 잡은 고참 직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친절하게 부서장에게 설명해줬고 이를 본 신입사원들도 선배 직원들을 잘 따르게 됐다고 한다.

부서장도 더 열성적이 되어 부하 직원의 어려움을 챙기게 됐다. 이 부서의 달라진 모습이 다른 부서에까지 영향을 미쳐 부서간에 서로 열심히 하려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졌다.

사장과 간부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던 현장 직원들의 마음의 문이 한 신입 여직원의 조그만 자기희생을 통해 열린 것이다.

내 것을 조금만 내놓으면 우리도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이를 내놓은 어린이의 마음이 5000명의 배고픈 사람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났으면 한다.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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