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출판계의 큰 흐름 중 하나는 미시사와 생활사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 책은 유흥계를 호령한 별감, 투전에 몰두한 도박꾼, 과거 대리시험 전문가 등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인물과 사회현상의 뒷얘기들을 통해 조선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미시사를 다룬 대표작으로 꼽힌다.
‘책의 향기’ 자문위원 등이 꼽는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역사의 그늘을 가볍고 흥미롭게 그려내면서도 전문적인 사료에 근거해 품위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는 “저자의 글쓰기가 언뜻 치밀해 보이지 않은 듯하지만 공식 비공식 사료를 섭렵하느라 들인 노고가 그대로 배어나는, ‘엉덩이로 쓴’ 수작”이라고 평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시대의 특수성에 주목하는 역사학자들과 달리 저자가 한문학자(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답게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투전과 도박에 몰두한 18세기 도박꾼의 모습에서 현대의 로또 열풍을, 대리과거시험 소동에서는 고시 열풍을 읽어낸다.
이에 대해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옛날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선은 현재를 향함으로써 역사를 오늘로 당겨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는 힘을 갖게 한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역사학자들의 관점으로는 특정한 사례로 그 시대를 일반화해 묘사하는 이 책이 못마땅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역사를 살아있는 시선으로 되살려 내는 힘은 저자가 가진 미덕”이라고 말했다. 특히 책에 곁들인 조선후기 풍속화 도판에 대해 정 교수는 “구도나 색채 등 회화적으로만 이해됐던 도판이 사료의 문맥과 만나 동영상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고 평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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