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남파된 무장공비, 경찰에 넘겨진 그 무장공비를 직접 다뤘던 정보과 형사. 2000년대에 이들이 다시 만난다면?
이들의 첫 만남과 훗날의 해후는 ‘칼날’처럼 첨예한 이념대립의 시대를 지나 ‘햇살’ 같은 화해를 갈망하는 남북관계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
1968년 강원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진 이듬해 늦가을. 강원 강릉시 사천 진리포구에서 젊은 어민 두 명에게 ‘무장공비’ 배승태가 붙들린다. 형사 강동호는 변변한 저항 없이 순순히 민간인에게 붙들린 승태가 자수했으리라고 짐작하지만 그는 끝내 자수한 것이 아니라 체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승태는 수감된 지 몇 년 만에 사면되고 결혼한 뒤 식당을 경영한다. 그러나 ‘빨갱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와 파경을 맞고 결국 자신이 침투했던 곳에 횟집을 내고 정착한다. 승태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실성기 있는 여인 나연주를 사랑하지만 연주는 첫 남자를 찾아 떠나고 만다.
2003년, 중견기업체 사장이 된 동호는 경찰서로부터 행려병자가 된 연주의 수첩을 건네받고 거기서 승태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동호는 고향의 어머니가 성폭행당해 미쳐가고 있는 동네 처녀 연주를 거둬 키웠던 지난 일을 기억에서 불러낸다. 연주는 대학생이 된 동호를 연모하고 동호는 그저 욕정으로 연주를 범해 그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수첩을 매개로 34년 만에 다시 만난 승태와 동호는 검거 당시의 ‘진실’과 연주로 엮인 인연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함께 기울인 술잔에 이념도, 쓰라린 개인사도 담아 한데 털어 넣는다.
승태는 남파 당시 식곤증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은장도를 가지고 놀던 자신에게 어머니가 위험하니 달라고 해 건네주는 꿈을 꾸었다는 것. 그러다 깨보니 곁에 젊은 어부 둘이 와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권총을 건네줬다고 털어놓았다. 이념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승태가 무기를 버리도록 한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49세에 ‘현대문학’으로 ‘늦깎이’ 등단했던 작가 김용만씨(62)는 “이념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과 사회의 순정과 순수를 묻고 싶었다”며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위하는 휴머니즘이 화해를 모색할 수 있는 바탕”이라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