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자선의 이유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7분


93도, 148도, 133도. 2000년부터 3년간의 우리 사회 ‘사랑 체감온도’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말연시에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 설치하는 ‘사랑의 체감온도탑’은 목표액의 1%에 해당하는 성금이 모일 때마다 1도씩 눈금이 올라간다. 올해 목표액은 921억원. 18일 현재 수은주는 겨우 19도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낮은 온도다. 자선냄비를 내건 구세군도 목표액 25억원을 채울지 걱정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썰렁하다는 체감경기 탓일까.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는 구호는 ‘착하게 살자’는 말처럼 지극히 당연하게 들린다. 이웃돕기는 전통적 미풍양속이고, 사회에서 받은 이익과 감사를 공동체에 환원하는 게 도리라는 말도 옳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심상찮다. 사랑의 체감온도탑을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기업이다. 그런데 기업들이 불법 대선자금 제공 때문에 만신창이가 됐으니 과연 목표액을 채울 수 있을지, 온도탑을 주관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근심한다. 콩나물 값 아낀 돈을 내놓던 사람들도 이번엔 심사가 편치 않다. ‘그들’ 사이에선 수억 수십억원의 돈이 ‘대가 없이’ 마구 오갔다는데 이까짓 푼돈이 무슨 도움이 될지 갑자기 쑥스럽고 심드렁해진다.

▷사람은 왜 사람을 돕는가.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그 이듬해 나온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이웃돕기라는 지당한 명제에 논쟁의 불을 붙였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하는 유전자가 남을 돕는 것은 ‘이번엔 내가 도왔으니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땐 나를 도와 다오’ 식의 상호교환적 박애라거나, 친절을 베풂으로써 이성의 주목을 끌어 원활한 2세 복제를 꾀한다는 신호이론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최근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사람들은 다음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상호신뢰가 없다면 차라리 판을 깨고 만다는 ‘최후통첩 게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이 착한 행동을 북돋기 위해서는 정부와 제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다. 자선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공동체의 규칙을 깨는 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해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착한 행동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공동체의 규칙을 깰 때는 어째야 하는지는 안타깝게도 소개되지 않았다. 그래도 학문적 이론이나 정부의 역할과 상관없이 남을 도와 본 사람은 안다. 작은 정성이 이웃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자신에게도 얼마나 큰 기쁨으로 돌아오는지를. 불법 정치자금 제공 기업도 이웃돕기를 통해 이미지를 바꾼다면 더 좋을 텐데.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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