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학술 논문과 문학 작품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이런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늘고 있다. 특히 경제학과 관련해서는 까다로운 경제 이론을 소설이나 동화 같은 형식을 빌려 쉽게 설명하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책 역시 이런 시도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매우 건강하고 뛰어난 ‘이종교배(異種交配)’의 산물이다.
이 책은 워싱턴의 사립 명문교인 에드워드고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샘과 영어영문학 교사 로라의 사랑 이야기다. 샘은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로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자본주의 체제)’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다. 반면 로라는 문학도에 어울리는 낭만주의자. 샘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회사의 이윤을 임의로 사회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라는 주장을 펼치고, 로라는 그를 냉정한 인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샘의 주장이 ‘경제학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고 점점 그에게 끌린다. 그 와중에 샘은 학교 임원과의 마찰로 해고당한다. 로라는 흥분한 나머지 샘에게 소송을 하라고 권유하지만 샘은 “나는 자본주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분노가 다른 사람의 선택의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해고 조치에 순응한다. 그것이 ‘계약’에 의한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흔히 소설의 형식으로 학술 이론을 설명한다면, 그 틀이 되는 소설의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게 되기 쉽다. 플롯이나 줄거리에 신경을 쓰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본질’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도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경제학자인 저자(워싱턴대 와이든바움센터 소장)는 그런 한계를 교묘하게 극복했다. 샘과 로라의 사랑이야기 사이에 불법 행위로 축재하는 악덕 기업가와 그의 비리를 캐는 정부 기관원의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 물론 이 이야기가 TV 드라마의 일부라는 것과, 그 때문에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나버린다는 점에서는 다소 맥이 풀리지만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기에는 충분한 ‘장치’가 된다.
주로 실물 경제에 관한 내용은 샘과 다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샘은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에 관해, 인플레이션과 화폐 가치에 관해, 그리고 체제를 꿰뚫지 못한 채 미봉책에만 그친 경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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