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전나무 숲을 배경으로 마법의 눈송이들이 흩날리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 흰색 튀튀(발레용 스커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눈송이 모양의 소품을 들고 군무(群舞)를 출 때, 그 순백의 공간이 주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에 누군들 가슴 두근거리지 않을까.
상상해 보자.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수천만개의 얼음조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놀라운 별 모양 결정들이 작지만 장엄한 얼음 꽃으로 소매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다.
미국의 물리학자 케네스 리브레히트(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눈송이,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눈 결정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어떻게 얼음이 그렇게 섬세하고 다양한 형태로 자랄 수 있을까. 결정은 어떻게 자라며, 그 단순한 물리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그런 복잡한 형태와 문양이 저절로 생겨날까.
눈송이는 대기 중에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는데, 1초에 무려 1000조개의 결정이 생긴다. 이런 방대한 양의 눈송이를 생산하는 공장은 겨울날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구름이다.
눈구름에서 미세먼지는 물방울을 형성하는 핵이 된다. 하나의 물방울이 아주 미세한 얼음 알갱이로 변하고 나면, 공기 속의 수증기를 끌어들여 성장하고 마침내 어엿한 눈 결정이 된다. 눈 결정은 구름 속을 수십분간 떠다니다 충분히 크게 자라면 땅으로 떨어진다.
눈 결정 안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00경(10억×10억)개의 물 분자가 들어 있다. 따라서 똑같은 눈 결정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눈송이의 대칭성과 복합성에 주목한다. 눈송이에서 발견되는 대칭성은 물 분자의 결합방식을 따른 얼음 결정의 격자(格子)구조에서 눈송이의 6각형 모양이 생겨나기 때문. 눈 결정은 복잡한 모양으로 자라면서도 여전히 대칭을 유지하는 복합성을 보인다. 6각형 평판의 6개 끝부분이 가지를 뻗으면서 다른 부분보다 더 빨리 자라고, 이 가지에 우연히 혹이 생기면 자라서 곁가지가 된다. 이런 순환을 통해 눈 결정의 형태가 생긴다.
1930년대 일본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는 최초로 인공적인 눈 결정을 만들었다. 그는 각기 다른 온도와 습도에서 수많은 눈 결정을 키웠는데, 온도나 습도 등의 성장조건이 눈 결정의 형태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평판 모양은 영하 15도에서 얇고 크게 성장하며, 길고 홀쭉한 기둥 모양은 영하 5도에서 나타난다. 눈송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문자처럼 자신들을 만들어낸 구름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다.
‘애써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고, 값비싼 기계를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겨울의 눈보라, 열린 창문, 한 조각 모피나 벨벳, 거기에다 평범한 돋보기 하나, 그리고 호기심만 있으면 누구나 관찰할 수 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실험실을 향해 눈만 활짝 열어두면 된다.’(프랜시스 치커링·눈송이 예술가)
책에는 저자가 고안한 현미경 사진기로 찍은 200여장의 눈송이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원제 ‘The Snowflake’(2003).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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