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기르던 토끼 부부가 어느 날 마당의 풀을 뜯고는 끅, 소리를 내고 죽어버렸다. 아내는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듯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토끼가 죽은 이유를 찾겠다며 마당에서 풀을 뜯어먹는 등 토끼의 행동을 따라하던 아내도 끅, 소리를 내고 죽어버린다.
“눈이나 비 따위 현상이 전해주는 환절기의 느낌은 항상 낯설었다. 그 느낌은 이젠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오래전 침몰한 잠수함처럼 내 감각의 이면에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초점을 맞출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 흐르고 있었다. 그 허한 하늘을 대하자니 토끼 부부의 언제나 태연하던 모습이 보고 싶어졌고 발작적으로 화를 내곤 하던 아내의 모습도 그리워졌다.”
2000년 표제작(토끼를…)으로 데뷔한 72년생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람을 뜯어먹는 소방대원, 배설물을 요구하는 화장실 등이 등장하는 이 책에서 작가는 다분히 엽기적인 상상력의 실험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가의 ‘엽기성’을 백민석 정영문 등 이전의 신세대 작가들과 구별 짓는 것은 ‘엽기’의 행간에 흐르는 처연한 슬픔의 감성이다.
주인공들은 꽃들을 짓밟으며,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갈증을 달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자신들을 둘러싼 기괴한 현실에 그다지 낯설어하지도, 적대감을 보이지도 않는다. 주어진 상황의 기괴함이 주는 기묘한 멜랑콜리에 주인공들이 전이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독자는 그 ‘기괴의 멜랑콜리’에 쉽게 전염되거나 막막해진다.
작가는 자신이 동원한 극단의 상상력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디디고 선 지반은 과연 확고하고 믿음직한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괴하면서 신용할 수 없는 것, 막막하고도 고독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주인공들은 구원을 요청하지도, 연대를 구하는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아내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내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그 비밀을 표상하는 가장 근사치의 기호일 것이다.” 표제작의 주인공이 내뱉는 말처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말해주는 가장 근사치의 기호이기도 한 듯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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