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엔이 정한 ‘쌀의 해’다. 국제적으로 쌀농사의 생산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어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8억 인구를 구해내려면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쌀이 남아돌아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굳이 유엔이 쌀의 해라고 정하지 않았더라도 쌀 문제는 올 한 해 우리나라의 뜨거운 이슈가 될 듯하다.
▷우리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에 서명하면서 쌀 시장 개방을 당분간 미뤄뒀다가 2004년에 재협상을 하기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과 약속했다. 농민은 쌀 시장 개방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여건은 개방이 불가피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우리와 함께 특정 품목의 시장 개방을 유예 받았던 일본(쌀)과 이스라엘(양고기)은 이미 ‘빗장’을 풀었다. 우군(友軍)이 없어진 셈이다. 반면 쌀 수출국인 중국이 WTO에 새로 가입해 공세는 곱절로 세질 전망이다. 미국만도 벅찬 마당에 한국 상품을 가장 많이 사가는 중국마저 협공을 한다면 버텨내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
▷국익을 위해서는 농민도 양보해야 하지만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농민만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쌀 경작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런 기술을 갖고도 비싼 땅값과 인건비 때문에 국제 쌀값보다 몇 배나 비쌀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개방에 따른 농민 피해를 직접 보상해주고 농촌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무역 한국’과 ‘농촌’이 함께 사는 길이다. 올 한 해는 모두가 상생(相生)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하소서.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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