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가 징그러울 만큼 ‘완전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남편에게 “나를 좋아해 줘…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워” “사랑해…나중에 다시 만나…마저 살자” 할 때의 사랑과 감사와 미안함과 처연함이 담긴 김희애만의 연기는 김수현만의 마술적 언어와 만나 생명력을 빛냈다. 예쁘게 보이려고 자는 장면에서도 짙은 화장을 지우지 않는 여느 탤런트와 달리 그는 정말 병자 같은 얼굴로, 앙상한 등가죽으로도 연기를 했다. 사나이 드라마 ‘무인시대’만 봐 왔다는 중년 남성조차 그 연기에 중독돼 마누라 건강까지 챙기게 됐다는 얘기가 떠돌 정도다.
▷10대에 일을 시작해 20대엔 이미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다는 김희애도 김수현 드라마에 출연한 건 처음이란다. 그의 드라마에 두어 번 출연하면 들게 된다는 ‘김수현 사단’엔 아직 가입 못한 셈이다. 집필작마다 화제를 일으켰고 출연자마다 스타로 만들었으니 연기자들이 거기 못 들어가 안달하는 것도 당연할 성싶다. ‘김수현 파워’가 방송사 사장 부럽지 않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김수현 파워의 핵심은 그의 경쟁력이다. 산다는 게 뭔지, 사람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를 통달한 듯한, 전지전능한 작가의 시각과 고집이 그에게는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와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올리는지를 안다. 작품 속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할 배우를 집어내는 선구안도 갖췄다. 이를 좋아하는 시청자와 그렇지 않은 시청자가 있을 뿐. 유능한 사람의 파워는 간혹 아니꼽기는 해도 절망스럽지는 않다. 그게 선무당과 용한 만신의 차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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