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채점이 잘못된 것인지, 경제 분야만 한번 되짚어 보자. 성과가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는 공정성 시비가 적을 테니까.
소득분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자리는 4만개가 줄었다. 1999년 이후 매년 일자리가 35만∼86만개씩 늘어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십만개나 사라진 셈이다. 신용불량자 행렬에는 100만여명이 새로 합류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초 작년 경제성장률을 5.3%로 내다봤으나 최근 반토막인 2.7%로 낮췄다. 노 대통령은 잠재성장률을 7%로 높이겠다고 공약했지만 한국은행의 공식 통계로는 오히려 4%대로 떨어졌다. 투자와 소비는 언제 회복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침체에 빠져 있다. 지난해 말 본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2%만 ‘경제가 안정을 이뤘다’고 응답한 게 당연해 보인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는 공통점이 10가지 있다고 한다. ‘계획만 잘 세운다’ ‘공부하기 전에 연필 깎고 책상 치우고 할 일이 많다’ ‘공책은 오색찬란하다’ 등등. 시급한 현안을 제쳐 놓고 장밋빛 ‘로드맵’ 그리기에 바빴던 이 정부가 닮은꼴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시험 발표가 나야 공부를 한다. 또 벼락치기가 통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문제가 곪아 터진 뒤에야 나온 부동산대책과 신용카드대책이 비슷하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시험 점수가 낮으면 “이번 시험은 좀 어려웠어” 하고 넘어간다. 청와대의 한 고위 경제참모는 어느 좌담회에서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은 비교적 선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던가.
비록 성적은 나쁘더라도 어디에 잘못이 있었는지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학생에게는 희망이 있다. 현 경제팀에도 이런 기대를 함직할까.
노무현 정부는 출범 후 내놓은 335개 주요 경제정책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지난해 12월 30일 가졌다. 41개를 완료했고 288개를 정상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단지 6개만 부진하다는 것이 이 자리에서 나온 결론이다. 6개가 부진한 이유는 대부분 국회의 입법 지연이나 이해집단의 반발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100점인데 대외변수나 국회 때문에 외환위기 후 최악의 경제난이 초래됐다는 말인가. ‘완료’와 ‘정상 추진’의 결과를 언론이 포위하고 있는 탓에 국민이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부는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경제정책을 펴는 데 실패한 내부 원인부터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실기(失機)한 정책은 종 친 뒤 써낸 답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자체채점은 100점, 국민의 채점은 낙제점인 낯 뜨거운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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