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불출마 선언' 신선한 메시지

  • 입력 2004년 1월 6일 18시 19분


‘경륜 있는 중진’ 의원으로 꼽혀 온 한나라당 한승수(韓昇洙) 의원과 ‘전도유망한 초선’으로 평가받아 온 오세훈(吳世勳) 의원이 5일과 6일 잇달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치권 안팎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은 ‘물갈이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최근까지도 지역구를 탄탄하게 관리해 낙선을 걱정할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결단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불출마를 결심한 배경 때문이다.

한 의원은 교수, 주미대사, 경제부총리, 외교통상부 장관, 유엔총회 의장 등의 경력이 말해주듯 현장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국회 내의 대표적인 경제·외교통이다. 그를 두고 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 박사가 있기에 한국은 행복하다”고 평한 일이 있을 정도다.

초선인 오 의원도 4년 가까운 재임기간 중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매년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될 만큼 ‘기대주’로 꼽혔다. ‘물갈이론’으로 당내 공천혁명의 불씨를 지핀 사람 역시 그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퇴장의 변은 간명했다.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구습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보이더군요. 결국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오 의원)

“오랫동안 번민했습니다. 아쉬움은 많지만 (떠남으로써) 기성 정치권에 무엇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한 의원)

‘국민에게 좋은 정치(政治)란 다리를 놓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 물에 잠길 돌이 되고 나무가 돼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지적처럼 ‘새벽(정치개혁)을 알리는 종’을 울리기 위해 머리를 찧는 까치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정치를 시작도 하기 전에 보스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정초부터 전직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의 집에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정치신인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개혁의 전제는 자기희생이다. 자기희생 없이는 선진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결단이 정치권의 ‘내 탓이오’ 운동에 불을 지피는 발화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반병희 정치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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