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것은 평소 영화를 잘 보지 않던 40, 50대 관객이 적지 않고, 젊은 여성들이 눈물을 떨어뜨리며 극장을 나선다는 사실이다.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과정과 뜨거운 전우애, 자폭으로 삶을 마감하는 라스트 신 등을 감동적으로 버무려 낸 연출의 힘일 것이다. 한 여대생은 “나라가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청을 높였고, 어느 여중 3학년생은 “정말 70년대 우리나라에 저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영화 ‘실미도’는 중앙정보부가 1968년 ‘청와대를 까러 온’ 북의 124군부대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의 목을 따오기 위해’ 결성한 공군 684부대의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 ‘갈 데까지 간’ 인생들인 부대원 31명은 실미도에서 살인병기가 되지만 한반도 정세의 변화로 3년여 만에 용도 폐기된다. 끝까지 살아남은 24명은 71년 8월 23일 기간병을 사살하고 버스를 탈취한 뒤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던 중 서울 대방동에서 최후를 맞는다. 당시 중학생이던 필자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현장을 목격했지만 진실을 알 리 없었다. ‘공비(共匪)’로까지 매도됐던 그들은 1993년 4월호 ‘신동아’를 통해 비로소 그 실체가 알려진다.
▷강 감독은 ‘1000만 관객’과 일본에서의 성공을 기대한다고 한다. 실미도에서 희생된 영령들이 도와준다면 불가능한 수치도 아닐 것이다. 현대사에서 남달리 큰 고난과 갈등을 겪었던 한국은 ‘실미도 사건’ 외에도 영화화할 소재들이 많다. 의식 있는 감독과 역량 있는 배우들이 있는 한 억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령들은 반드시 재평가될 것이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노고를 치하하며 삼가 ‘684부대원’들의 명복을 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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