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기는커녕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부 정치인 때문에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각종 뇌물비리나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은 구속 직전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증거가 드러나도 말을 요리조리 바꾸며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4당 대표회담 때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관심은 불법 행위의 정도 차이에 있지 않다. 그런 불법을 저질렀느냐 아니냐 하는 사실관계가 중요할 따름이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대선자금이 드러난 만큼 청산하고 가야하며 당사자들은 진지한 고백성사를 해야 한다”며 “고백성사는 용서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격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에선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얼마 안 가 모두들 잊어버리고 결국 사회적 시스템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최근 한강 물에 자녀를 던지거나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죽이는 등 각종 사회병리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개탄이 넘치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들이 1989년 ‘내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의 기도를 토대로 한 이 운동은 우리 사회의 신뢰회복을 겨냥했다. 불신과 잘못의 씨앗이 남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자기성찰의 뜻을 담고 있었다.
정치 사회 경제 분야 등 곳곳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전에 고쳐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외화를 더 벌거나 우리나라 돈의 화폐가치가 올라가면 수치상으로는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나라는 그런 숫자놀음에서 만들어지는 선진국이 아닐 것이다.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즉 ‘뉴 코리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2002년 월드컵 때 확인했다. 질서 친절 청결 등 선진국의 요건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자발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한국의 힘은 곧 ‘국민의 힘’이다.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더 이상 네 탓이 아니라 ‘내탓이오’를 생활화해야 한다.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만드는 것처럼 ‘뉴 코리아’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김상철 사회2부 차장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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