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와 정치권 물갈이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마당에 젊고 개혁적 이미지의 정동영 체제는 정치권 전반에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비록 당의장이 과거 당 총재처럼 당의 재정과 인사권, 그리고 공천권을 장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리더십은 정당의 진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총선겨냥 성급한 행보 안쓰러워 ▼
그러나 정동영 체제가 이미지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돌파해야 할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전술적 고민도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고, 정당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미시적, 거시적 차원의 과제가 반드시 상충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 우선순위 설정의 기준이 정치인, 정당, 그리고 한 국가의 정치수준을 결정한다.
정동영 체제의 열린우리당은 우선순위의 설정에서부터 다른 정당과 차별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하루하루의 전투상황에 몰두해 전쟁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당이 아니라, 전쟁의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선택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길 원한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1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전투에서 밀리면 내일도 밀리고 결국 4월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진흙탕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앞세운다고는 하지만, 당리당략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수 야3당의 야합’을 주장하지만 ‘소수 여당의 행패에 가까운 실력 저지’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분당 당시 최후까지 표결에 의한 결정을 주장했던 당사자들 아닌가.
정동영 체제의 열린우리당은 비록 원내 소수이지만 여당으로서 의연하고 대범한 정치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한 박자 쉬어 가는 정치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당의장에 선출되자마자 성급하게 총선을 겨냥한 행보를 내딛는 것 같아 안쓰럽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의 1 대 1 TV 토론을 제안한 것은 민주당을 제치고 한나라당과의 양당구도를 만들어보려는 전술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것은 민주당에 표를 던지면 한나라당이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 같고, 총선에서 기호 2번을 사용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당직자들의 발언과 맞물려 씁쓸하기만 하다.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 믿어야 ▼
정동영 체제는 정치개혁을 행동으로 옮겨 정치불신을 종식시키기를 기대한다. 정치불신은 국민과 정치권의 상호불신을 의미한다. 국민이 정치권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우선 정당이 유권자를 신뢰하는 데서부터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면 어떨까.
과거 정당들은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돈을 뿌리고, 조직을 동원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열린우리당은 솔선해 밀실공천이 아닌 투명한 상향식 공천으로, 지역대결이 아닌 정책대결로, 돈 뿌리는 선거가 아닌 깨끗한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총선에 임하기 바란다.
정동영 체제가 열린우리당의 새로운 시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간곡히 부탁한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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