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왜 총선이 불안한가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12분


대통령선거를 총지휘했던 사람을 비롯해 국회의원 8명이 구속된 사태가 어디 예삿일인가. 손길승 SK회장 등 유수 기업의 총수가 이런저런 혐의로 구속되거나 소환될 처지인 것 역시 예삿일이 아니다. 모두가 정치자금이란 지뢰밭에서 일어난 일이고 보면 정치자금은 과연 ‘천의 얼굴’을 가진 요물이다.

정치판의 해묵은 관행적 비리가 파헤쳐지고 낯익은 얼굴들의 잇단 불출마선언을 보니 한국 정치가 달라지긴 하는 모양이다. 새로운 정치질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금 치르는 사회적 비용은 감내할 만하고 또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변화의 조짐이 우선 총선정국에 긍정적으로 수용돼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다. 그래야만 변화의 몸부림이 제대로 결실을 볼 수 있고, 한국정치도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기류는 과연 기대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다.

▼최악의 ‘감정선거’▼

총선을 앞두고 불안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자주 들린다. 딴 나라에서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지만 우리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왜인가. 총선정국에 몰려드는 폭풍우와 벌써 불어대는 바람이 불안감을 느낄 만큼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해지면서 여론도 둘로 갈리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이번 총선은 최악의 ‘감정선거’가 될 것 같다. 대통령을 호위하는 열린우리당이 한쪽에 있고, 반대쪽에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과 분당의 배신감을 되씹고 있는 민주당이 대치의 3각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부터 복합적인 갈등구조를 말해준다. 여기에다 감정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통령은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다. 지난 1년간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분할적 리더십은 이미 알려진 것이고 최근 대통령과 친위그룹 인사들간의 청와대 밥상 대화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민주당 지지는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란 대통령의 말은 총선전략상 대세 양분화가 유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정파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치공방’의 하나로 설명했지만 감정이 상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치부될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대통령의 독전(督戰) 내용이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전의를 부추기는 인상이 짙다는 데 있다. 민생을 위한 정책경쟁이 아니라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 싸움의 양상이 짙어지면 사회분열은 더 심화되고 만다. 국가적으로 소탐대실이다.

심리적으로도 이미 위기감은 고조돼 있다. ‘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현 정부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대통령의 언급에서 나타났듯이 총선패배는 정권좌초라는 위기의식이 이미 깔려 있다. 재신임이니 하야니 하는 것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배수진의 한 자락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도 총선에서 실패할 경우 코드를 달리하는 정치판에서 버티기가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이렇다 보니 이번 총선은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바람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바람선거가 무엇이겠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유무형의 조직을 앞세워 갖가지 선동적 구호를 외치지 않겠는가. ‘감성마케팅’이 극성을 부릴 것이다. 상대방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뭉개 버리는 섬뜩한 전술이 횡행하지 않겠는가. 어쭙잖은 ‘개혁 끌어안기’와 필사적인 ‘부패 떠넘기기’ 싸움은 극에 달할 것이 뻔하다. 낙선운동 당선운동이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 같다. 독전이 집요한 만큼 상대방을 긴장시키며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앉아서 죽을 정파가 어디 있겠는가. 총선이 극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갈라서기’ 선거인가 ▼

이쯤 되면 말이 국회의원선거지, 실은 죽고살기 식 전투다. 겉으로는 새로운 바람이 부는듯하지만 현장기류는 개선 방향이 아니라 옛 수법대로 거꾸로 가고 있으니 겉과 안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총선결과란 것도 친노세력과 반노세력의 집계 아니겠는가. 선거에서 사회를 둘로 갈라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총선의 쟁점이 돼야 할 민생과 정책은 이미 썰렁해졌다. 왜 총선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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