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일
면 소재지 중학교를 통학하며 바람 빠진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거나 체인에 기름을 얻어 치던 곳, 중학교 못 간 석이는 그곳에서 세수대야에 주부를 담그고 빵꾸를 때웠다, 기계충의 석이 머리 위로 신작로 지나가던 삼륜차가 하얀 먼지를 씌워놓고 사라지던 곳, 석이에게 미안해 금빛으로 빛나는 중학모자를 벗고 까까머리로 지나던 곳, 몇 대의 중고 자전거가 늘어서 있고 기름때 묻은 헝겊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던 곳, 장날 석이와 함께 주먹만 한 찐빵을 몰래 훔쳐 먹던 시장 옆, 이제는 석이가 주인이 되어 지나는 나를 불러 세워 텅 빈 위장에 막걸리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는, 추억의 삼천리 자전거포
-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문학과경계사) 중에서
폴폴 먼지 나는 신작로 길로 자전거 한 대 달려간다. 등 따가운 햇살 무료한 하굣길, 돌부리 걷어차던 아이들 두엇 ‘와아’ 함성 지르며 뒤쫓아 간다. 책 보퉁이 얹고, 미는 듯 매달리며 엉켜서 굴러간다.
마을 어귀 둥구나무 아래 물통 텡갱이(테두리) 훔쳐 굴렁쇠 굴리던 아이들 ‘까르르’ 달려 나온다. ‘따릉따릉’ 우체부 아저씨가 굴러온다. ‘쿨렁쿨렁’ 마을회관 술도가에서 받아오는 막걸리통이 흔들리며 굴러온다.
굴렁쇠, 자전거 굴리던 아이들 머리통 점점 굵어지며 달려온다. 기계총 땜통, 콧물 소매 벗어 던지며 달려온다. 목울대 불거지고 턱수염 자라더니, 어느 새 머리 벗겨지고 아랫배 출렁이며 달려간다.
추억은 과거를 미화시킨다. 추억은 통증이 사라진 풍경이다. 추억은 통증을 쾌감으로 바꾸는 짜릿한 왜곡이다. 추억만 한 안주와 위안이 어디 있으랴.
추억 속 찐빵만으로도 언제나 배부르거늘 아직도 ‘막걸리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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