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이들 독감의 발생 경로가 같다고 본다. 사람과 돼지와 오리가 뒤섞여 사는 중국 남부지방에서 오리의 바이러스가 돼지로 옮았다가 사람한테 전이돼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조류독감과 비슷한 양상이다. 아직까지 사망자가 20여명인 조류독감에 세계가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주국립대의 토니 맥마이클 교수는 “인간의 삶이 근대화 세계화함에 따라 동물 바이러스도 진화해 인간에게 옮아 붙는다”며 동물이 인간을 위협하는 일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하긴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철새가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까지 나왔을 정도니.
▷역병도 천재지변처럼 인간의 통제범위 밖에 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건 가능하다. 97년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홍콩 당국은 불과 사흘 만에 닭과 오리 1만500여마리를 도살처분해 사망자를 6명으로 묶을 수 있었다. 지난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비밀에 부쳤다가 국제적 비판을 받았던 중국도 이번엔 조류독감 전담 총지휘본부를 긴급 설치하고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아주 가까운 과거조차 잊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조류독감이나 사스 못지않은 불치병인 모양이다. ‘역사망각증’의 주인공은 태국의 탁신 시나왓 총리다. 세계 4위의 닭고기 수출국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조류독감 발생을 숨겼다가 결국 주식의 공황투매와 시장 신뢰성 상실을 불러왔다는 것이 방콕 포스트지의 지적이다. 탁신 총리는 최근 “이번 사태는 우리가 과거의 교훈에 대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실수는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걸 일깨웠다”고 변명했다. 중국처럼 깨끗하게 사과하고 문책했더라면 뒤늦게나마 국가 이미지를 회복시킬 수 있었을 텐데, 남의 나라 일이지만 안타깝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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