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디언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즈음해 버킹엄궁을 겨냥했다.
“왜 오늘날까지 영국인들은 ‘우리를 …지배하도록/ 하느님, 여왕을 보우하소서’라는 국가(國歌)를 불러야하느냐.” 신문은 납세자들이 왕실을 위해 연간 3500만파운드(약 752억원)를 지불하고 있다고 따졌다.
왕실이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가라앉았던 즉위 50주년 기념일. 그것은 달라진 ‘버킹엄궁의 오늘’이었다.
여왕의 사생활마저 심심찮게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린다.
여왕이 사냥을 하던 중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꿩의 목을 맨손으로 비트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동물애호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군인 필립공이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을 이끌고 있던 터라 사건은 더욱 맹랑했다.
왕실의 스캔들은 즉위 내내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오랜 불화와 이혼은 왕실의 악몽이었다.
그녀에게 다이애나는 업보(業報)였다.
그녀는 며느리에게 냉혹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다이애나를 끔찍이 사랑했던 국민들의 미움을 샀다. 그녀에 대한 추모 열기는 반(反)왕실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녀는 곧잘 엘리자베스 1세와 비견된다.
“나는 대영제국과 결혼했다”며 독신으로 일관했던 1세. 그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찔렀던 여걸이었다. 세계를 무대로 한 1세의 ‘식민지 사냥’과 2세의 ‘꿩 사냥’은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
1세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그녀는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의 노을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대관식 때 써야 했던 선대(先代)의 왕관은 너무 버거운 것인지 모른다. 무수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이 왕관은 무게가 2.5kg에 달했다.
왕관의 무게는 전 세계의 4분의 1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지난날과 대서양의 변방(邊方)으로 쇠락한 ‘오늘의 영국’을 상징하는 씁쓸한 비유같기도 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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