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바티칸市國’ 독립

  • 입력 2004년 2월 10일 19시 02분


1982년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바티칸 도서관에서 머리를 맞댔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공산 치하의 폴란드가 계엄령 선포에 이은 검거선풍으로 잔뜩 얼어붙어 있을 때였다. 레이건 행정부의 안보담당보좌관 리처드 앨런은 이들 정교(政敎) 수장의 회동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밀동맹’이었다고 회고한다.

그해 11월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는 감금에서 풀려났고 자유진영의 자금과 정보(情報)가 물밀듯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마교황청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추진하고, 또 관철시켜 왔다.”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친 칼 번스타인은 로마 교회가 동유럽의 정치혁명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바티칸 외교’는 새 장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시민혁명으로 중세의 절대군주와 귀족계급은 몰락했으나 교회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세속에 간섭해 왔음을 서구의 근대사는 보여준다. 프랑스대혁명의 그 기나긴 장정(長程)은 교회의 입김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려는 안간힘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날개는 꺾이지 않았다.

1989년 공산권 몰락 이후 로마교황청은 이들 지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새로운 헤게모니의 세계지도(地圖)를 그려왔다. 사회주의 이념의 빈자리는 종교적 열정으로 채워진다.

로마가톨릭의 동진(東進)이랄까. 그 선봉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있다. 그는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이고, 세속적이면서 동시에 영적(靈的)인 양면정책으로 세계의 ‘분리된 형제들’을 껴안았다.

1929년 무솔리니에 의해 바티칸시국(市國)으로 독립했던 로마가톨릭. 바티칸은 지금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2000년 교황은 지난날 교회가 인류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사죄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세계 주요 종교와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거짓된 안도감’을 심어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인다.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교황에게서 이들은 ‘질투하는 신(神), 여호와’를 보는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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