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 선수 김성택(27). 일본에서 그는 이 이름 대신 ‘춘일왕(春日王)’으로 통한다. 요코즈나부터 조노쿠치까지 10등급으로 철저히 서열화 돼 있는 스모.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1군 계급인 마쿠우치에 진입했던 그는 지금 꽤 알려진 선수다.
성택은 인하대 3학년 때까지 잘 나가던 씨름선수. 대학대회 무제한급에서 우승해 프로씨름단의 구애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일본행을 택했을까.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습니다. 국내에서 씨름을 해봤자 연봉 몇 천만원에, 그것도 20대 후반이면 선수생활을 그만둬야 하잖아요. 배운 건 씨름뿐이고….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스모로 돈을 벌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성택이 세살 때 남편을 잃고 갖은 고생을 한 어머니 최옥순씨(62). 2남1녀를 키우느라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청소부로 등허리가 휜 어머니를 보며 김성택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떠난 게 1998년 11월. 현실은 차가웠다. 철저하게 계급화된 스모계에서 김성택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잔코나베 만들기와 청소뿐. 7등급인 마쿠시타가 돼야 제대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상위 계급 선수들 뒤치다꺼리와 잡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중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잔코나베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저도 한자리에서 불고기를 20인분 가까이 먹어치우는 대식가이지만 매일 잔코나베만 먹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습니다.”
120kg 안팎이던 체중이 151kg까지 불었다. 김성택은 2002년 5월 6등급인 주료로 승격했고 마침내 지난해 1월 마쿠우치에 입성했다.
“5억원쯤 벌었습니다. 돈을 꼭꼭 모아 지난해 5월 인천에 아파트를 장만해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기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김성택은 9일 조국을 찾았다. 14,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스모 서울 공연’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출전선수는 40명. 그는 1회전에서 코토류를 꺾으면 몽골 출신으로 최상위급인 요코즈나를 차지하고 있는 아사쇼류와 맞붙는다. 그는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지만 고국 관중 앞에서 멋진 경기를 펼쳐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낯선 땅에서 홀로 ‘저팬드림’을 가꿔가고 있는 김성택. ‘춘일왕’의 화려한 고국무대 신고식을 기대해보자.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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