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두원/이헌재 팀, 원칙에 충실해야

  • 입력 2004년 2월 12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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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의 난제가 산적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헌재 경제팀이 출범하게 됐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진 이 부총리의 취임에 일단 시장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특히 취임 일성으로 성장을 강조해 재계는 자못 고조되었을 것이다. 유달리 심리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 한국의 투자행태를 고려할 때, 이 부총리의 취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조정 시스템부터 살리길 ▼

그러나 새 경제팀의 앞길이 그다지 순탄하지만은 않다. 시급한 각종 현안이 산적해 있으며, 이들을 처리하는 환경 역시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가 발등의 불이며, LG카드의 부실처리 역시 늦추기 힘든 현안이다. 구조조정 전문가인 이 부총리와 통상 전문가인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이런 난제들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우리에겐 이 외에도 고용창출의 문제, 노사안정의 문제, 그리고 신용불량의 문제 등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처리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헌재팀의 성공을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경제팀 실정의 원인을 정책조정 기능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는 물론 전문성 부족에도 기인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리더십의 부족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정책의 실효성뿐 아니라 정책의 적시성 및 일관성 역시 크게 저하됐다. 이제 새 경제팀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서로의 손발을 맞추고 팀워크를 다듬는 데에 역점을 두기 바란다.

장관에 취임할 때는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원칙에 충실한 정책을 펴겠다고 하지만, 막상 각론에 들어가서는 현실의 문제를 봉합하는 데 급급해 미봉책을 내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고용창출 문제의 근본대책은 기업의 투자 증진이지, 각종 공공사업을 통한 임시직의 증대가 아니다. 또한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이지, 단순한 임금안정 내지 파업자제가 아닌 것이다. 보다 민감한 부동산 및 신용불량자 문제 역시 거시경제의 흐름 속에서 처리하는 것이 보다 원칙론적인 해법일 것이며, 단순히 세제개혁이나 개인구조조정과 같은 미시적 정책으로는 그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적인 해법은 그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새 경제팀이 어느 정도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누릴 것이다. 이런 환경을 십분 활용해 그동안 원칙에서 벗어났던 일부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취임 초에 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새 경제팀 역시 성급한 결과를 요구하는 여론에 밀릴 가능성이 상존한다.

새 경제팀이 처한 정치 사회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척박하다. 여론과 이념은 분열돼 있으며, 정치권은 총선에 눈이 멀어 경제정책을 돌볼 여유가 없다. 또한 과거와 달리 각종 이해단체 및 시민단체 등 경제정책에 간섭하는 세력은 부지기수로 늘었다. 이 점에서 새 경제팀에 대한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삼고초려했다는 이 부총리를 제대로 활용하는 길이다. 물론 이 부총리 스스로도 정치권, 특히 청와대로부터 가해질 외압을 단호하게 막아내야 할 것이다.

▼리더십 살려 外風 차단해야 ▼

이 부총리는 2000년 금융감독위원장 직을 떠나면서 ‘뒷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기 위하여, 눈 덮인 광야를 걸을 때는 어지럽게 걷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한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 이 부총리가 단행한 구조조정의 여러 성과는 뒷사람들에 의해서 많이 어지럽혀졌다. 그렇게 어지럽혀진 과거의 실정을 정리하고 동시에 새로운 앞길을 개척해야 하는 책무가 새 경제팀에 주어져 있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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