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한나라당 ‘춤추는 黨論’

  • 입력 2004년 2월 13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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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13일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10만5000∼31만5000명으로 하고 국회의원정수를 현행 273명으로 동결하는 안을 당론(黨論)으로 확정했다.

이 결정 후 그동안 ‘밥 먹듯’ 당론이 바뀌어 왔다는 점 때문인 듯 한나라당 소속 정치개혁특위위원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의 당초 당론은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 10만∼30만명에 의원정수 273명. 그러나 지난해 12월 22일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여성의 국회 진출 문호를 넓히기 위해 의원정수 증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나라당은 바로 이튿날 “인구 상하한선 확정에 따라 늘어나는 지역구 의원 수만큼 전체 의원 수를 늘리기로 했다”며 전격적으로 당론을 바꿨다.

하지만 의원정수 증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최 대표는 사흘 뒤인 25일 “우리가 언제 당론을 변경한 적이 있느냐. 원래 당론인 273명을 고수하겠다”고 발뺌했다.

한나라당의 오락가락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이어 벌어진 야 3당 협상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어물쩍 의원정수 289명안을 주도해 밀어붙이다가 다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곧바로 원래 당론으로 복귀했다.

이처럼 최 대표의 의중에 따라 당론이 바뀌는 양상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

최 대표는 최근까지 “FTA 비준안은 당론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며 자유투표 방침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13일 한승주(韓昇洲) 주미대사를 만난 자리에선 느닷없이 “당론으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같이 ‘최 대표의 발언=당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는 것은 여권 체질을 벗지 못하는 한나라당 구성원들의 ‘권리 포기’의 탓도 크다.

하지만 보스의 의중에 따라 당론이 오락가락하는 전근대적 행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과반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혼란스러운 행보 때문에 국회와 국정마저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론은 한 정파가 힘을 과시하기 위해 내거는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공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반영한 가치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민혁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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