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인체 감염 사례가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외국의 일부 감염 사례가 언론에 집중 보도되면서 국내의 닭고기나 오리고기 소비가 격감했다. 예년의 경우 월간 약 4000만마리의 닭이 소비됐지만 최근엔 소비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가격 역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오리고기는 소비가 10분의 1로 줄어 그 손실이 가히 천문학적 액수에 이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실업률까지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조류독감은 국내 축산업계에 투하된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익힌 닭-오리 조류독감과 무관 ▼
이러한 비극은 오래전부터 국내 축산업계에 내재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후진국일수록 위생관념이 희박하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발병이 없는 한 예방조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가축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방역에 아주 애를 먹곤 한다.
조류독감이 인체에 전염될 수 있다고 하면 생닭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감염 방지를 위한 모든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TV에선 여전히 맨손으로 생닭을 처리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 이래서야 소비자의 불신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가축 전염병은 가축 간에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고, 감염된 농장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통해 전염이 가능하다는 것을 농민들이 인식하지 못해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조류독감 이전에도 인체에 전염된다는 광우병으로 인해 쇠고기 소비가 줄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동남아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돼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그것도 국내 유수의 언론을 통해 접했을 때 닭고기를 먹을 용기를 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부정적인 내용이 반복해서 전달되면 사람들은 실제보다 훨씬 강하게 위험을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 중 감정적인 소비자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과학적인 정보보다는 소문에 민감하다. 더욱이 정부가 결정적인 정보를 종종 왜곡하거나 감춰 왔다는 점도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킨 요인이다. 그렇게 해서 한번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되면 소비자들은 닭고기가 안전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믿지 않는다.
구미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인체에 전염될 수 있는 가축 질병이 발생하면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육류소비가 위축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국민의식이 과학화돼 있고 정부의 일처리가 투명해 국민이 정부의 발표에 순순히 따라주기 때문이다. 또 언론도 경제적 영향이 큰 사건은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손익을 따져 신중한 보도를 한다.
▼소비자도 ‘과학적 판단’ 필요 ▼
이제라도 정부와 관계 전문가, 그리고 언론은 소비자들이 과학적인 판단으로 닭고기 소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충실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도계장에서 도살된 닭은 건강한 닭이기 때문에 조류독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스스로 위생방역에 철저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식으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면 결국은 국민도 정부와 업계를 신뢰할 것이요, 닭고기와 오리고기의 소비도 다시 증가할 것이다. 소비자들도 고기를 익혀 먹으면 조류독감에 감염될 위험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은 접어두고 그저 ‘께름칙하다’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소비 여부를 판단하는 잘못된 습관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이무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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