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넌이 전문을 발전시켜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47년 7월호)에 발표한 ‘X논문’은 냉전시절 미국 대외전략의 기본 지침이 됐다. 훗날 헨리 키신저 박사가 “대사관의 보고서 한 장이 워싱턴의 세계인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자신의 이론이 이처럼 오랜 세월 주목받고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모든 학자와 정치인의 꿈일 것이다. 90년대 탈(脫)냉전이 도래하면서 몇몇 지식인들도 40년대에 케넌의 ‘X논문’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재현해보겠다고 나섰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유라시아 경영론’이 그런 예들이다.
▷봉쇄정책은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응전략이었다. 그러나 거기엔 필연적으로 비판도 따랐다. 봉쇄주의가 애초부터 소련과의 대화와 협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전제했다는 점, 미국의 무차별적인 개입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 등이다. 그렇게 보면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일방주의를 신봉하는 요즘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집단)’도 일정 부분 케넌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케넌이 며칠 전 100세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 탈냉전 이후 낙관론이 한창이던 때 그는 “미국이 군소 국가들의 일에 사사건건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포린 어페어스’ 95년 3·4월호).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 북한 등 지구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런 오늘의 상황을 케넌은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