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유성/AK소총과 평화

  • 입력 2004년 2월 25일 19시 15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무기는 러시아의 AK-47 자동소총이다. 1947년 개발된 이래 오늘날 100여개국이 이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1억정이 넘게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작이 간편하고 고장이 거의 없는 데다 가격마저 싼 장점을 갖췄기 때문이다.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1970년대 “미국은 코카콜라를, 일본은 소니를, 소련은 AK-47을 수출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AK-47의 명칭은 ‘Automatic Kalashnikov-1947’에서 따왔다. 미하일 칼라슈니코프가 1947년 개발한 자동소총이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기갑장교로 참전했던 칼라슈니코프는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부상한 뒤 병원에서 이 소총 개발을 구상했다고 한다.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많이 팔린 무기지만 그는 돈을 벌지는 못했다. 옛 소련은 국민의 특허권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85세인 그는 월 593달러(약 71만원)의 퇴직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델프트의 국제 방산장비 전시회에서 한 기자가 칼라슈니코프를 인터뷰했다. AK-47이 저개발국이나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들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조의 질문에 그는 “소총 개발은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항변했다. “나치 독일이 옛 소련을 침략했을 때 2500만명이 희생됐다”면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총을 만든 것이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하겠다는 마음이 문제”라고 정치인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이 영국에 설립한 ‘Audio Books For Free’라는 회사가 최근 AK-MP3라는 신제품을 내놨다는 소식이다. 200억개의 단어와 9000곡의 음악을 담을 수 있는 이 제품은 마치 탄창처럼 AK-47에 끼워 사용하게 돼 있다. 회사측은 이 제품을 ‘평화를 위해서’ 개발했다고 한다. “내전 국가 병사들이나 테러리스트는 대부분 AK-47을 들고 있는데 이들이 AK-MP3로 좋은 책이나 음악을 듣다 보면 갈등과 증오의 마음이 사라질 것”이란다. 칼라슈니코프의 ‘항변’이 AK-MP3를 통해 실현되길 희망해 본다.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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