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불과 20년 전, 아니 10년 전만 해도 마라톤은 우리네에게는 곁눈질하는 것조차 만용같이 여겨지던 그런 외경의 세계였다. 나도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페크의 말을 존경의 마음으로 간직하며 인용했었다. “그냥 뛰고 싶으면 1마일을 달려라.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싶으면 마라톤을 해보라.”
마라톤의 매력은 자유에 있다. 풀코스 105리를 3시간대에 달리는 사람도, 5시간대에 완주하는 사람도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과 공간을 그들은 그냥 달리기 위해 달리는 것일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달리며 떠오르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것을 굳이 떨쳐내는 애호가는 없으니까. 어제와 오늘, 내일과 꿈, 가족과 친구, 직장과 승진, 사업과 돈…. 별의별 주제가 다 스쳐간다. 갑자기 번쩍이는 아이디어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나름대로 정리도 한다. 베스트셀러 ‘나는 달린다’로도 유명한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이 말하는 ‘완전히 다른 생활’의 주제가 몸무게 감량이 아님을 깨달으며 되뇌기도 한다. 아, 마라톤에서의 자유는 이런 것이구나.
하지만 마라톤은 훈련한 정도만큼만 할 수 있다. 또 그만큼만 해야 한다. 완주한 사람 모두가 승리자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가시가 있다. 쉼 없는 훈련과 부러지지 않는 의지만이 가시를 잘라낼 수 있다.
“10kg을 감량했다는데…” “머리가 허연 사람도 뛰는데…” “화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던데…” “답답한 세상사도 잊을 수 있다던데….” 우선 시작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예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최근 부쩍 발생 빈도가 높아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마라톤 돌연사’의 상당 부분은 무리에서 비롯되었을 게다. 10km 달리기 능력이 마음만으로 100km 달리기 능력으로 바뀐다면 어디 차근차근 사는 재미가 있겠는가.
이제 마라톤은 하나의 도시축제다. 왜 축제인가. 대회에 나서는 애호가가 급증한 때문일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동아마라톤에 처음 나선 174명의 일반인 출전자 수는 1999년에는 1만명을 넘었고 1970년 126명이던 뉴욕마라톤의 일반 참가자 수는 1982년에는 2만5000명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마라톤이 사랑과 주목을 받는 축제로 발전한 데에는 시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해외 대도시 마라톤에 나간 적이 없다. 국내 대도시 마라톤 참가 경험도 많지 않다. 하지만 보도로 접하든 실제로 참가하든 늘 마라톤 경구 하나를 실감한다. “마라톤에는 단 하나의 레이스만 있다. 그것은 휴먼 레이스다.” 그렇다. 도시의 마라톤은 시민과 애호가, 그리고 선수가 함께 달리는 잔치다.
75번째 동아마라톤. 내 마음은 벌써 움직인다. 빌딩 숲 사이로 쳐다보는 서울의 하늘, 잠실대교를 건너며 들어보는 한강의 소리…. 그래, 며칠 남지 않았지. 오늘 저녁엔 또 한 번의 자아여행에 대비해 경포호수에 나가 달을 보며 달려나볼까. 3월은 내게도 동아마라톤의 계절이다.
윤득헌 관동대 관광스포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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