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수하르토 여섯 번째 연임

  • 입력 2004년 3월 9일 19시 00분


인도네시아 ‘개발의 아버지’ 수하르토. 1998년 3월 그가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된다. 여섯 번째 연임이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래 이때까지 단 두 명의 대통령밖에 갖지 못했다. ‘독립의 아버지’ 수카르노가 22년간 집권했고, 그 뒤를 이어 수하르토가 32년간 통치했다.

“이번이 끝이다. 더는 출마하지 않겠다.”

수하르토는 대통령 4선 후 이렇게 말했다. “다시 출마하기에는 너무 늙었다.”(5선 후) “1998년이면 내가 몇 살이냐.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지.”(6선 후) 이렇게 해서 그는 선출직으로는 최장기 집권 기록을 남기게 된다.

수하르토는 박정희와 닮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 때 네덜란드 식민치하의 동인도군에 입대했고 일본 군정 하에서 장교를 지냈다. 196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그는 ‘개발과 안정’이라는 기치 아래 연평균 7%의 고도성장기를 연다.

그는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결코 2인자를 만들지 않는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와 흡사했다. 그리고 폭압적인 언론통제. ‘야수의 폭력으로 침묵을 강요했다.’ 야당은 꼭두각시였고 국회는 ‘고무도장’이었다.

그러나 외교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독자노선을 지향했다. 미소(美蘇)를 저울질하며 제3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했다. 1만3000여개의 섬, 300여개의 서로 다른 종족, 동서길이 5000km, 인구 2억이 넘는 대국을 일사불란하게 다스렸다. 적어도 ‘지역감정’은 없었다.

박정희에게 없는 것이 또 있었다. 나라살림을 결딴 낸 ‘족벌체제’.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오죽하면 ‘도시바 왕국’이라고 했을까. 수하르토의 셋째아들 토미와 큰딸 시티, 차남 밤방의 이름 첫 글자를 딴 조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IMF의 개혁요구를 받아들여야 했으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독과점 철폐.’ 그것은 자신의 권력자원과 기반을 송두리째 도려내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IMF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이 등을 돌렸을 때, 그는 권좌(權座)를 내놓아야 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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