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 100’을 통해 세계 출판시장에 우리 문화의 진면목을 알리는 것이 사업 의도였다면 이미 외국 독자들을 찾아가기 위해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돼 있는 명저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100선을 내놓아야 했다. 여기에 100선에 들 자격을 갖췄음에도 아직 번역이 안 된 책들을 넣어 100선을 갖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지우 선정위원장은 “‘한국의 책 100’ 선정 기준은 명저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다”라고 못 박고는, 공감하기 힘들고 번다한 기준들을 내세웠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 최고의 문화축제’이지만 그해 국제 저작권 계약의 절반가량이 이뤄지는 ‘세계 최대의 책 시장’이라는 기본 속성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 시장에서 책은 ‘화폐’와 같다. 세상의 화폐가 각국의 고귀한 인물과 문화자원을 담고 있지만 결국 널리 유통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의 책 100’의 선정결과는 이 같은 출판 산업 논리에 부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는 심사의 공정성을 들어 24명의 선정위원 중 15명을 학자들로 구성했다. 출판인은 3명뿐이었다. 번거롭더라도 차라리 학자들과 출판인을 반반씩으로 구성해 무엇이 세계 출판계에서 파급력을 갖는 한국책인지 ‘격론’을 거치게 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책 100’의 번역 출판 실무는 문화관광부가 2001년 3월 만든 한국문학번역원이 맡는다. 이 때문에 이번 선정에 대해 총 23억9000만원의 예산을 실제 집행하게 될 한국문학번역원의 ‘실적 확보’와 조직위의 ‘얼굴’을 살려주기 위한 ‘전시행정 논리’의 합작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저작권 수입 역조 국가다. 혈세로 이뤄진 국고를 지원할 때는 우리 출판 산업이 처한 현실을 타개할 만한 실효 있는 방안인지부터 우선 점검해야 할 것이다.
권기태 문화부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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