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수술 끝낸 정치개혁법 ▼
국회의원들의 현재와 미래에 직결된 각종 정치관계법을 객관적 제3자가 아니라 국회의원 스스로 개정하는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 이를 마냥 매도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총선을 얼마 안 남기고 16대 국회 임기 막판에 해당 법률이 간신히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사실도 안타깝긴 하지만 별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제 와서 따져볼 것은 이들 법률의 구체적 내용일 것이다. 대체로 보아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내려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수가 26명 늘어난 것에서는 야합을 통한 ‘끼워 팔기’의 혐의가 엿보이지만, 이는 비례대표의 확대와 함께 15대 국회 수준으로 환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양보다는 그래도 질 아니겠는가. 특히 정치자금법이나 정당법의 경우 개혁이라는 명분 자체를 위해 너무 이상적으로 나간 것으로 여겨질 만큼 획기적이기까지 하다. 유권자나 후보자에게 공히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출입구를 철저히 막고 감시에 나선 꼴이라 이제 깨끗한 선거는 따 놓은 당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정치신인에 대한 선거운동 기회 확대, 지구당 및 합동 연설회 폐지 등도 이번 17대 총선에서 처음 선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정치개혁법이나마 국회를 통과한 것은 물론 국민 여론과 시대적 여망에 쫓긴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아직은 ‘좋은’ 국회의원을 뽑는 적극적 입법이라기보다 ‘나쁜’ 국회의원을 뽑지 않게 하는 소극적 제도라는 인상을 아무래도 감추기 어렵다. 이상과 현실, 과거와 미래가 어지럽게 혼재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이게 한국정치의 솔직한 현주소일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작은 출발조차 이제는 말로 하는 입법이 아니라 집행 단계에서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정치권과 국가기관, 그리고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일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멋있는 집과 행복한 집안은 별개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대목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급한 김에 수술을 끝낸 것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1인2표 방식의 선거인데, 비례대표에 대한 의견을 국민이 직접 전달한다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지금처럼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한결같이 바닥을 기는 상황이라면 정당정치 자체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선행돼야 했다. 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제주도처럼 민의(民意)가 과소 대표되는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예외 규정에 쉽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미국식 상원제도의 도입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지구당 폐지의 실효성 여하를 떠나 중앙당 대 지구당이라는 구분법도 지방자치시대에는 분명 낡은 발상법이다.
▼‘정치선진화’ 실천 뒷받침돼야 ▼
선거일을 전통적인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한 것도 주5일 근무시대의 도래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적절하지만 차제에 선거일 자체를 주중이 아니라 토·일요일 가운데 선정하는 것이 선진국 정치에 더욱 가깝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간 요즘, 아쉬우나마 이번에 개정된 정치개혁법이 유권자들의 발길을 4·15총선 투표장으로 돌리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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