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테러 피난처

  • 입력 2004년 3월 12일 18시 19분


세계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영국의 런던이다. ‘선데이 타임스’는 현재 40명의 억만장자가 런던에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최고 부자는 65억파운드(약 14조원)의 재산을 가진 러시아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라고 전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억만장자의 3분의 1인 13명이 외국인이다. 영국인이 런던에 사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왜 외국인까지 런던으로 몰려갈까. 이유는 런던의 세금체계가 다른 외국 도시에 비해 부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브라모비치의 경우 세율이 1%만 줄어도 1365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억만장자들에게 런던은 세금 절약을 위한 약속의 땅, 문자 그대로 ‘tax heaven’이다. 절약되는 세금에 비하면 타국에 거주하는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절세(節稅)를 위해 외국 도시에 사는 유명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tax heaven을 보통 ‘조세 피난처’라고 하지만 세금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는 부호라면 ‘절세의 천국’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고집할 것이다.

▷부자들이 찾아야 할 피난처가 하나 더 생겼다. 이번에는 테러 피난처다. 11일 스페인에서 발생한 폭탄테러(190여명 사망)는 테러가 마침내 유럽 본토에 상륙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끼게 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예센투키, 인도네시아 발리,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에서 대형테러가 발생했다. 건물 비행기 기차 등 테러대상이 다양해지고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발생지역도 무차별적이다. 세계가 벌벌 떨고 있으니 발 빠르게 테러 피난처를 만들면 부자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테러 단체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외곽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긴 미국은 9·11테러 이후 국토안보부까지 만들어 철저히 대비하고 있으니 공격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진위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알 카에다의 산하 조직으로 알려진 단체가 스페인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對) 이슬람 전쟁 동맹국을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우리도 자칫하면 ‘미국의 외곽’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으니 ‘테러 피난처’라고 자임하며 마음을 놓을 처지는 아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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