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에릭 에마뉘엘 슈미트(44)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지만 91년 돌연 작가의 길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철학 에세이 외에 희곡과 소설을 써왔는데 특히 종교를 소재로 한 동화풍의 소설인 ‘영계(靈界) 사이클’ 시리즈로 대중적 호응을 받고 있다.
이 시리즈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활달한 어른들을 만나면서 종교의 세계를 이해하는 이야기들을 다뤘다. 엄숙한 전도사 같은 교훈조 이야기가 아니라 따스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소설들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그는 이슬람교를 다룬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 불교를 다룬 ‘밀라레파’를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된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는 기독교를 소재로 했다.
열 살 소년 오스카는 자신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부모는 ‘겁쟁이’라 그를 제대로 도와줄 수 없지만 아동병동의 나이든 간호사인 ‘장미 할머니’만은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준다. 장밋빛 가운을 입고 다니는 이 할머니는 오스카에게 ‘하느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라고 권한다.
오스카는 편지를 쓰면서 하루를 10년처럼 보내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남은 열이틀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낸다. 그가 병동에서 만난 소녀 페기 블루는 ‘어린 열정’의 대상이었다.
“오늘 아침 페기한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오직 그녀만을 사랑한다고, 그녀 없인 살 수 없다고. 페기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에요. 특히나 산전수전 다 겪고 난 오십대부터는요.” “페기 블루가 떠났어요. 집으로 갔어요. 페기랑 난 한평생을 함께했는데 이제 난 혼자예요. 대머리에다 지친 몸으로 침대에 쓰러져 있다고요.”
2002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파리 무대에 연극으로 공연됐다. 당시 ‘장미 할머니’ 역을 맡았던 87세의 배우 다니엘 다리외는 권위 있는 몰리에르 연극상의 연기상을 받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다리외에게 헌정했다.
짧은 시간 동안 한평생의 희로애락을 다 맛봤다고 생각하는 오스카의 마지막 편지들이 강한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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