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강력한 대통령후보였던 조병옥이 미국에서 서거하자 자유당은 이기붕이 출마한 부통령선거에 총력을 기울인다. 고령인 이승만의 유고에 대비해 그를 ‘정권연장’의 방패막이로삼고자 했다.
그러나 야당의 장면 후보는 너무 강했다. 통상의 부정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특단의 대책’이 강구된다.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투표지는 이미 기표가 끝나 있었다. 이른바 ‘올빼미 투표’. 선거당일 오전 3시부터 자유당 찬성표를 채운 투표함이 투표소에 반입되기 시작했다.
‘공개투표’도 도입됐다. 몇 명씩 조를 짜 조장이 기표를 확인한 뒤 투표함에 넣도록 했다. ‘완장부대’가 동원됐다. 전국에서 ‘유령 유권자’가 횡행한다. 그해 부산 인구는 2만명이 증가했으나 유권자 수는 7만5000명이 늘어났다.
야당의 선거운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스피커와 마이크만을 노리는 신종 강도가 들끓었다.
야당은 유세 때마다 경찰과 반공청년단, 정치깡패들의 방해공작에 부닥쳤다. “야당이 유세를 하려고 하면 ‘신비스럽게도’ 버스와 택시운행이 멈췄다.”(AP)
그러나 이날 밤 개표 결과에 정작 당황한 것은 자유당이었다. 이기붕 후보의 득표율이 95%를 넘어선 것. 부랴부랴 득표율을 70∼80%선으로 하향 조정해야 했다.
‘마산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던가.
기어코 마산에서 일이 터졌다. 투표 당일 경찰의 제지를 뚫고 투표소에 들어간 야당원들이 ‘올빼미 투표함’을 발견한 것. 마산은 이날 전국에서 맨 처음 선거포기를 선언하고 시민 1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격렬한 시위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체가 떠오른다. 4·19혁명에 불을 댕기는 순간이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어떻게 지켜온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다시 그 민주주의의 시련(試鍊)을 견디고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