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5년 전 북한을 탈출해 중국,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을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은 뒤 2002년 마침내 ‘남조선 땅’에 정착했다. 그가 남한에서 의술을 펼치는 곳은 한의원이 아닌 실향민과 탈북자를 위한 인터넷 사이트 ‘북마루’(bukmaru.com). 그는 여기서 ‘건강한 삶’이란 코너를 맡아 북한식 한의술과 민간요법, 건강관리 상식 등을 제공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남한 생활기’도 연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당뇨, 비만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북한에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빈혈, 소화장애가 가장 흔한 질병이거든요.”
함경북도 청진의대 동(東)의학과를 졸업한 그는 도립병원에 해당하는 ‘함경북도 임상의학연구소’에서 7년 동안 한의사로 일하다가 1999년 북한을 탈출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북한을 떠나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당시 북한에는 기아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의사인 제가 열흘 가까이 굶었을 정도니 오죽했겠습니까.”
북한에서 인텔리 계층에 속했던 그였지만 중국에 밀입국한 뒤 식당종업원,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궂은일을 했다. 남한으로 오는 길에 중국 공안에 잡혀 20일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 역시 남한에 정착한 뒤 다른 탈북자들처럼 세상물정을 몰라 고생을 했다. 다단계 판매원으로 나섰다가 정착금 대부분을 날리기도 했다.
“왜 한의원에서 일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남한 한의사 자격증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교육부로부터 남한의 한의대를 졸업한 것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한의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한의사로 일하겠다는 ‘남조선 드림’이 물거품이 되면서 실의에 빠져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는 우연히 ‘북마루’에 올린 글이 인기를 끌면서 ‘사이버 닥터’로 변신했다.
이 ‘사이버 닥터’에게 집에서 쉽게 써먹을 수 있는 북한식 민간요법을 한 가지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배앓이에는 그저 당근 삶은 물이 좋지요”라며 활짝 웃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