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정덕구(鄭德龜) 열린우리당 민생경제추진본부장은 “탄핵 발의는 우리 경제를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국가를 팔아 자신이 살겠다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또 홍재형(洪在馨) 의원은 “탄핵으로 정치적 불안이 확대되면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본부장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홍 의원은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경제관료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면서 경제전문가를 자부해 왔다.
하지만 탄핵안이 12일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경제 흐름은 달랐다. 종합주가지수와 원화가치는 월요일인 15일부터 바로 회복세로 돌아섰다. 17일에는 오히려 탄핵안 가결 전날인 11일보다 높은 수준에서 끝나 정 본부장과 홍 의원의 ‘경고’를 무색케 했다.
한국에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는 여야 모두 책임을 면키 어렵다. 경제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보다는 표의 득실을 따지면서 정치논리에 따른 ‘맞춤형 경제 해석’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의 전직 상원의원인 밥 케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잠시 (선거구민의) 비위를 맞추는 연설을 해서 박수를 받는 것과 진실을 얘기해서 비난을 받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박수를 받는 쪽을 택하고 싶다.” 표에 약한 정치인의 속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도 정 본부장과 홍 의원의 ‘대(對) 국민 협박’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제장관까지 지낸 ‘경제 전문가’들이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후유증을 과장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 변수도 많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 특히 경제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상황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고기정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