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학교 도서관에서는 일년 동안 아이들과 읽을 책을 정하느라 바쁘다. 국어 수업과 평가를 위해, 혹은 우리 학교의 학생 전체가 함께 읽는 행사에서 활용하기 위해 필독도서를 정하는 작업이었다.
필독도서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을 떠올리며, 모두가 함께 읽는 책이니만큼 재미와 의미가 동시에 있는 책을 고르려고 했다. 고전의 향기를 맛보게 하자, 문학 위주의 독서를 벗어나자, 즐겁게 다가와 가슴을 울리는 책을 고르자 등 주문이 이어졌다.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되 읽는 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책을 꼭 넣고 싶었다. 내가 왜 책을 읽는가에서 출발해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며,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이 세상의 어디쯤 되는지 생각하도록 이끄는 책을 읽히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네모의 책’은 자유롭고 신선하게 공부를 대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과 역사를 배열할 것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교과서다. 이 책의 주인공 네모는 우연한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고스란히 기억을 잃는다. 그는 컴퓨터의 하드를 통째로 날리는 것처럼 백지 상태가 되었다. 네모의 삼촌은 네모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함께 지적 탐사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네모가 ‘발견하는’ 역사와 예술, 생태학과 천문학, 종교와 철학 등은 네모 또래의 우리 아이들이 알아야 할 세상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서 시작해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는 수학의 기초를, 천문대에서는 시간의 개념과 우주의 경이로움을,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는 인간의 기원을 풀어낸다.
더욱이 이 책의 저자가 딱딱하지 않고 친절하게 전해주는 지식은 소설적 형식에 힘입어 술술 읽힌다. 진보나 상상력 혹은 자유와 평등 같은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목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은 부분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프랑스의 교육이 가진 깊이와 넓이가 부러웠다. 그리고 부러운 만큼 우리의 토양에서 길어 올린 책, ‘너는 한국 사람이야’를 채울 멋진 책을 기다린다.
이 책에서 그은 밑줄은 ‘뭐 하러 배워요?’라고 묻는 네모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사람은 배우면서 조금씩 마법사가 된다’는 말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남들을 더 잘 이해하고, 결국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란 생각은 참 소중하다. 아는 기쁨, 알아가는 행복을 다정하게 안내하는 ‘네모의 책’은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세상의 지식을 주입하기에 바쁜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다소 어눌하더라도 세상의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기억마저 회복한 네모의 모험을 따라가며 우리 아이들도 읽고 질문하는 재미, 깊은 눈을 갖기 바란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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