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기택/배드뱅크 뒷감당할 수 있나

  • 입력 2004년 3월 21일 19시 32분


정부가 최근 신용불량자대책으로 발표한 배드뱅크 방안이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금년 5월 문을 여는 배드뱅크는 2개 이상의 금융기관에 5000만원 이하의 부채를 6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채무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 연체자는 갚을 돈의 3%만 내면 원리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신규로 대출받게 되고, 이 돈으로 연체금을 상환하면 신용불량자 리스트에서 해제된다. 신규 대출금은 연리 6%로 8년간 분할상환하면 된다. 또 1년 이상 성실하게 갚아나가면 원리금 감면도 고려한다고 한다.

▼신용불량자 고용흡수 대책부터 ▼

이 조치가 발표되자 은행, 신용카드회사 등 금융기관은 대출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연체금, 대환대출금은 물론이고 정상대출금에서까지 연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이자를 주고 빌린 사채나 대환대출로 어렵게 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있는 선량한 채무자들 처지에서 보면 이 방안은 매우 불공평하다. 이번 조치는 3월 10일 현재의 신용불량자에게만 해당된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연체자는 계속 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정부는 신용불량자가 배드뱅크로 가더라도 연체기록은 여전히 신용정보회사의 개인신용기록에 남을 뿐 아니라, 새로운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다시 고율의 연체금리를 물리고 신용불량자로 재등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부의 이번 신용불량자대책은 경기회복을 위한 고육책이다. 2월 말 현재 신용불량자는 38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60%에 달하는 소비지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소비 회복이 불투명하면 기업투자는 살아나기 힘들고 고용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다시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긴 하나, 문제는 신용불량자들이 배드뱅크의 도움으로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면 쉽게 일자리를 얻고 따라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고용이 증대되기 위해선 경기가 좋아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조치의 성공 여부는 경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달려 있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이들 대다수가 다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배드뱅크 방안은 별 효과 없이 도덕적 해이만 가중시켜 금융시장을 더 큰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제책은 정확한 경기예측을 근거로 시행해야지 총선 등 정치적 이유로 서두르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배드뱅크가 연체자들에게는 채무상환의 유인을 제공하고 채권자들에게는 채권추심구조를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채권회수가 용이해져 채권금융기관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배드뱅크로 인해 오히려 채권추심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들은 연체금 회수를 위해 나름대로 자체 회수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채무자에게 상환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연체 채권이 배드뱅크로 이전되는 기간에는 연체자들에 대한 상환 압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채무 상환에 대한 채무자들의 심리적 부담이 약해지고 금융기관의 채권회수율은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배드뱅크는 공동출자에 의해 설립되므로 신규지원 자금의 연체가 발생할 때 추심의 강도가 개별 금융기관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채권추심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

신용불량자는 금융기관과 채무자 사이의 금융거래라는 사적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해서 발생한다. 채무자의 변제 능력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기관은 처음부터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대출 결정을 한 금융기관이다. 따라서 해당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금융기관들이 자체 신용회복프로그램으로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도록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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