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은우/‘부동산 로또’ 누구 탓인가

  • 입력 2004년 3월 25일 19시 06분


24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한미은행 지점 앞에는 오전 2시부터 기다린 사람들의 줄이 100m를 넘었다. 서울 용산구에 지어질 주상복합 ‘시티파크’에 청약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줄을 선 한 70대 할아버지에게 “주상복합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글쎄, 아파트와 비슷한 거 아냐?”라고 말했다. 그 옆에서는 이동식 중개업자인 ‘떴다방’이 웃돈(프리미엄)만 억대에 이를 것이라며 청약자의 연락처를 받고 있었다.

23, 24일 서울 등 수도권의 193개 한미은행 지점은 청약을 받느라 일반 업무가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 주부와 분양대행사 직원의 실랑이도 눈에 띄었다. 그 주부는 19일자로 주소를 옮겨 남편과 별도의 가구주가 됐다. 그러나 분양공고일인 18일까지 가구주가 아니면 청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서울 중구 명동사무소 관계자는 “시티파크 청약을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직업과 나이를 불문하고 몰려든 청약자들이 약 25만명, 청약금으로 낸 돈만 무려 7조원 가까이 되는 등 ‘주택 청약사(史)의 새 기록’이 만들어졌다.

청약자의 다수는 평범한 주부와 샐러리맨이었다. 대구에 사는 은행원 하모씨는 “당첨되면 웃돈이 생기고, 아니면 청약금을 돌려받으면 그만”이라고 청약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시티파크는 선(先)분양 제도, 분양권 전매, 시중 부동(浮動)자금 등이 맞물려 생긴 일종의 ‘로또’였던 셈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돈은 또 다른 ‘시티파크’를 찾아가게 된다. 청약 현장에서 만난 주부 A씨는 “앞으로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하므로 땅이나 상가로 투자처를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부동산 로또’는 제도와 시장이 만들었다. 정부가 투기억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투기 바람은 아파트에서 땅으로, 주상복합으로 번졌다. 풍선 누르기인 셈이다.

건전한 투자처가 없다면 앞으로도 한국형 부동산 로또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이은우 경제부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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