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차이와 반복’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 입력 2004년 3월 26일 17시 42분


◇차이와 반복/질 들뢰즈 지음 김상환 옮김/709쪽 3만원 민음사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질 들뢰즈 지음 이찬웅 옮김/272쪽 9000원 문학과지성사

우리의 삶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경험에 드러나는 세계, 우리의 몸이 살아가는 세계, 현실세계는 우리에게 드러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세계의 거대한 부분은 우리에게 드러나 있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사유한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고 두 세계의 관계를 파악하며 그 사이에서 삶의 비전을 탐색하는 행위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두 방향에서 성립한다. 수평적인 비가시(非可視)는 사실상 현실에 드러나 있지만 인식 주체의 한계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차원이고, 수직적인 비가시는 특별한 방식(예컨대 자연과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숨겨진 차원이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인 질 들뢰즈(1925∼1995)의 사유에는 이런 수평적 계기와 수직적 계기가 있다. 그의 저서 중 ‘의미의 논리’와 ‘천의 고원’은 주로 수평적 계기, 즉 삶의 ‘표면’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사물의 심층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뤄지며, 심층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사건들의 계열화가 다뤄진다. 사물(‘기계’)과 사건이 어떻게 접속해 계열화되고, 접속과 일탈을 통해 어떻게 그것들의 영토화(영역의 점유) 또는 탈영토화가 발생하고,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의미가 발생하며 또 의미가 그런 과정에 삽입되는지 서술된다. 사물 또는 사건이 접속해서 만들어 내는 ‘배치’, 그리고 배치의 두 양상(정주적 방식과 유목적 방식), 그런 내용이 함축하는 윤리적 정치적 계기가 문화의 다양한 여건을 아우르면서 전개된다.

이에 비해 이번에 번역된 ‘차이와 반복’과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는 수직적 계기, 심층적 계기를 다룬다. 두 책에서는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메를로퐁티의 ‘가시와 비가시’를 잇는 고도의 존재론과 자연철학이 전개된다. ‘차이와 반복’은 동일성에 복속되지 않는 차이, 화석화돼 있는 사물의 체계를 뚫고 생성되는 사건들, 반복의 여러 계기와 거기에 함축되어 있는 시간, 감성적인 것에의 새로운 의미 부여, 현대 사유의 핵에 존재하는 잠재성 이론 등에 대한 논의가 비길 데 없는 치밀함과 방대함을 보여 주며 전개된다.

이 사유는 긴 우회를 거쳐 ‘주름’에서 다시 만개(滿開)하게 되며, 현상 이면에서 끝없이 접혀져 보이지 않고 때로는 펼쳐져 현상으로 드러나는 사물의 주름, 영혼의 주름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독창적 논의가 새로운 빛 아래에서 재창조된다. ‘차이와 반복’과 ‘주름’은 들뢰즈의 ‘깊이’의 철학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철학사의 걸작, 그것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원작에 대한 성실한 이해에 기반해 깔끔하게 번역된 두 한국어판은 한국에서의 들뢰즈 이해의 성숙을 보여 준다.

이제 들뢰즈의 주요 저작은 모두 번역됐다. 앞으로 남은 일은 들뢰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그리고 들뢰즈가 베르그송을 넘어 더 나아갔듯이 우리 역시 들뢰즈를 넘어 더 나아가는 것이다. 후자의 방향에는 세 가지가 있을 듯싶다. 분자생물학 이후의 자연철학, 신자유주의 이후의 정치철학, 그리고 들뢰즈가 호감을 가졌으나 파헤치지 못했던 ‘동양’.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서양철학 soyowu@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