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美FDA ‘비아그라’ 승인

  • 입력 2004년 3월 26일 18시 41분


한 남자가 방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한 손을 허리 뒤로 올리고 한 손으로만 팔굽혀펴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 한 손마저도 허리 뒤로 올리고 팔굽혀펴기를 계속한다. 어찌?

그 남자 옆에 푸른색의 작은 알약, 비아그라가 떨어져 있다.

1998년 3월 미국의 화이자사가 비아그라를 시판하면서 내보낸 TV광고다.

인류 최초의 ‘먹는’ 발기부전(임포텐츠) 치료제 비아그라. 그것은 복음이었다. ‘고개 숙인’ 남성들은 환호했다. 주사바늘로 굳이 음경을 찌르지 않고도 거뜬히 사내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그해 미 대선에 출마했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은 CNN과 인터뷰에서 비아그라의 임상실험에 참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미 적십자사 총재인 부인 엘리자베스는 그 ‘효능’을 묻는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남편은 참 점잖은 사람이었는데…. 비아그라는 정말 뛰어난 약이에요!”

비아그라는 그동안 전 세계 2000만명이 넘는 남성들에게 1억3000만건 이상이 처방됐다. ‘환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심봤다!”

여성을 위한 ‘핑크 비아그라’도 개발 중이다. 여성의 클리토리스가 남근(男根)에서 분화했다고 하니 어련할까.

임포텐츠가 치료를 요하는 병(病)인 것은 성욕과 정력의 괴리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그 불균형 때문이다. 마음은 굴뚝같은 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왜?

현대사회는 성(性)이 넘쳐난다. 과잉 생산되고 있다.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관음은 일상이 되었다. 이 주체할 수 없는 잉여(剩餘)의 성이라니.

대체 그걸 다 어디다 쏟아 부어야 하는가. 그 유일한 출구가 일부일처제라는 데 우리 시대의 비극이 있다. ‘점잖은 성’의 고독이 있다. 부풀어 오른 성의 우수(憂愁)가 있다.

그런데도 굳이 비아그라를 먹겠다고? 성난 야수를 풀어놓겠다고?

비아그라. 그것은 마치 바닷물과도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가시기는커녕, 목구멍은 뜨겁게 타들어간다.

비아그라. 그것은 생명의 유혹이 아니다. 죽음의 유혹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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