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나마 한 가지 안도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 직무대행이라는 시스템이 비교적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인치의 시대를 넘어 법과 제도와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상황에 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의 혼란을 잘 극복하면 탄핵소추 의결이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작은 여유 또한 생겼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
이런 여유와 안도감을 주는 원천의 하나는 바로 공직사회의 힘이다. 공직사회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원하고 위임한 뜻 그대로 법과 제도를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에 탄핵소추라는 초유의 사태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반백년이 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수많은 난관과 좌절의 시대를 극복하며 나라를 지탱한 축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관료사회’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배신과 질곡도 있었지만 이 세 축이 그래도 기본을 지켜 나왔기에 나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전진했던 것이다.
이 점에 비춰볼 때 최근 연일 계속되는 일부 공무원의 집단적 시국선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이어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탄핵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중앙부처와 시도 소속 6급 이하 공무원 4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도 ‘탄핵 반대’ 입장을 보인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군구 소속 6급 이하 공무원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는 조합원 13만명의 전국공무원노조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시국성명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물론 4·15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공무원도 물론 공무원 이전에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포괄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공무원이 시민 개인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에만 그렇다. 집단이나 단체로 움직이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헌법에도 굳이 공무원에 관한 조항을 따로 두고 있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제7조 1항)’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법정신을 구체화해 국가공무원법(제65조)은 ‘공무원이 특정 정당,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위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당에 매몰되면 국민 전체에 대해 책임지고 봉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와 행정이 분리됐고, 직업공무원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직업공무원 제도에는 ‘평생 동안’이라는 개념과 ‘할 만한 가치가 있는’이라는 철학이 배어 있다. 즉, 공무원 스스로는 물론 국민 일반으로부터 평생 동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으로 인정받아야 직업공무원 제도가 정착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특정 집단이나 정파에 경도된다는 인식을 줄 경우 그 집단이나 정파에 반대하는 국민은 공무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집단행동 공공의 신뢰 잃어 ▼
그 때문에 공무원은 정치적 풍랑에 좌우되지 않고 국민 전체에 무한 봉사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의미의 ‘관료사회’가 지난 세월 나라를 지탱해 온 세 축의 하나였던 것이다.
시국과 관련된 공무원들의 집단행동이 국가공무원법과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바른 길이다. 탄핵 파동으로 해이해진 공직사회의 기강을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신성한 것은 물론 중립지대이어야 할 공직사회가 갈등과 혼란의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기에 말이다.
임동욱 충주대 교수·행정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