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생활은 궁핍해지고 빚은 늘고

  • 입력 2004년 3월 30일 18시 46분


지난해 국민가계의 엥겔계수(소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 비중)가 외환위기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높아졌다. 벌이가 시원찮아 생활이 쪼들리면서 가장 기본적인 씀씀이인 식료품비를 뺀 다른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공식통계로 다시 확인하는 기분은 우울하다.

평균개념으로 보면 엥겔계수가 14.2%에서 0.2%포인트 오른 게 별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불경기의 최대 피해자인 저소득층이 겪은 상황은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도시근로자의 하위 10%에 해당하는 50만가구는 지난해 월 평균 수입이 전년보다 6% 줄어든 78만원이었다. 이 수입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려면 먹는 것조차 변변했을 리 없다.

생활고 속에서 빚은 빚대로 늘었다. 지난해 개인부문의 부채 총액이 1년 전보다 5.3% 늘어나 국민 1인당 빚이 1000만원을 넘어섰다. 또 개인들의 금융자산은 금융부채보다 2배 많은 수준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3, 4배에 크게 못 미쳤다. 유사시에 빚을 갚을 능력이 선진국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뜻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서 선심성 정책은 금물이다. 신용불량자대책에서 나타나듯 원리금 탕감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신용사회를 뿌리째 뒤흔든다. 일회성 복지정책도 효과는 제한적이면서 재정의 건전성만 악화시킬 소지가 많다. 경제원리를 무시한 분배우선주의와 실력행사를 통한 내 몫 찾기는 특히 경계해야 한다.

해결책은 건실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서 찾아야 한다. 그 결과로 소득이 늘면 생활형편도 나아지고 빚을 갚을 여력도 생긴다. 다행히 지난달에는 투자와 소비가 약간 되살아날 조짐을 보였다. 자칫 ‘총선 바람’이 소중한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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