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계의 뉴리더 가운데 한 사람인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은 “집사람이 겨울소나타에 심취해 6개월간 가정교사를 불러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영화 ‘클래식’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야구 선수 이승엽, 가수 보아에 대한 화제도 끊이지 않는다.
▼10년 침체 벗어나고 있는 일본 ▼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일본에서 이처럼 한국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색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경제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요시카와 히로시 도쿄대 교수(경제학)는 “요약하자면 ‘잃어버린 10년’에서 ‘사요나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1990년대의 10년간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조짐이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재계 원로인 세토 유조 아사히맥주 고문도 “일본경제는 비관주의에서 벗어났다”면서 “어렵게 기업 구조조정을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리특별고문은 “이번 경기회복은 재정확대를 통한 것이 아니라 민간주도형이어서 제대로 된 것”이라면서 “설비투자가 늘고 있어 경기회복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비관론이 있기도 하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본인들의 표정도 대체로 밝은 듯하다.
한국경제를 보자. 작년의 한국 경제성적표에선 ‘잃어버린 1년’이 눈에 확 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작년 경제성장률은 3.1%에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통계 기준이 바뀌어 이 정도로 나타났지 종전 기준으로라면 3%에 못 미쳤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646달러로 사상 최고치다. 단군 이래 최고 소득을 올렸다는데 왜 만세를 부르지 못할까. 실질소득이 늘어난 게 아니라 환율 변화에 따른 ‘착시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돈주머니가 커진 듯 보이지만 내용물은 시원찮다는 뜻이다.
석유파동이나 외환위기 때를 제외한다면 작년엔 거의 처음으로 민간소비와 투자가 줄어들었다. 좀 더 파고들면 청년실업, 신용불량자 400만명, 노사관계 불안,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중장기 발전 전략 부재 등 골칫거리가 수두룩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첫해 경제성적표가 왜 이런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반짝 경기마저 왜 나타나지 않았는가.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이 회복세를 나타내는데 왜 한국경제는 비실거리는가.
으뜸 원인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말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줄기차게 민간을 간섭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켰다. 기업인 대다수를 죄인시(罪人視)하는 듯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여느 정권 때보다 뚜렷했다. 노사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이런 분위기 탓에 외국인 직접투자는 발길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색깔이 짙은 정책이 남발됐다.
▼여전히 ‘기업하기 어려운’ 한국 ▼
대통령의 끊임없는 말실수 때문에 사회분위기는 안정되기 어려웠고 이는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가 활성화되고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겠는가.
‘잃어버린 1년’에서 벗어나려면 야릇한 이상주의(理想主義) 냄새를 풍기는 명분과 환영(幻影)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해야 한다. 한국은 1, 2년을 방황하면 10, 20년 뒤처질지 모른다. 아니, 지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영영 물 건너 갈 것이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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