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의 대물림 전통은 뿌리 깊다. 지난해 11월 총선거에서 당선된 의원 중 세습의원은 122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각료 17명 중 8명이 2세 또는 3세 정치인이다. 고이즈미 총리도 조부 때부터 일군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정계에 진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아들이다. 자민당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비례대표 후보에서 제외시키자 ‘부친이 나카소네의 방해로 총리의 꿈을 못 이룬 한(恨)을 간사장인 아들이 갚았다’는 해석이 나돌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대를 이어 정치를 업으로 삼으려는 2세 정치인 후보가 부쩍 늘었다. 1970년대 한국 정치를 주름잡은 박정희(朴正熙)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세 전직 대통령의 자녀들이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외치며 출마한 아들의 스토리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미국의 부시 가문이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을 보면 정치세습이 동아시아만의 특수 현상은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는 세습정치인을 ‘지반(지역구)’ ‘가방(돈)’ ‘간판(가문)’을 함께 물려받은 행운아라고 부른다. 달리기 경주로 치면 이들은 남보다 몇 발짝 앞서 출발선에 선 셈이다. 일본 정계는 정치인이 사망하면 자녀가 일정 기간 같은 지역구에서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정치세습이 더 활발해진 것은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다. 선대의 후광이 큰 만큼 책임도 무거워져야 한다. 가문의 이름을 팔아 단물을 빼먹을 생각으로 나선 2세는 없다고 믿고 싶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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